벽(壁)의 침묵 / 김창식

 

 

새로 이사 온 동네는 볕도 들지 않는 골목이 얼기설기 미로처럼 얽혔다. 시간이 멈춘 듯 음습한 골목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악취가 먼지처럼 일렁였다. 그보다 골목을 걷다보면 벽(壁)이 나타나 길을 막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어도 또 다른 벽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곤 했다.

벽의 모습은 엇비슷했다. 암적색 타일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벽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중충한 잿빛 콘크리트 벽이었다. 철 지난 전단지가 붙어 있고, 상형문자 같은 글씨가 보이는가 하면, 얼룩이 진 데다 움푹 파여 있기 일 수여서 찢겨나간 낡은 지도 같았다. 벽 앞에 서서 벽이 침묵하는 것을 보았다.

벽처럼 여러 의미를 갖는 말도 흔치 않으리라. 일상에서 대하는 거실이나 건물의 벽,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나 담쟁이넝쿨이 간당간당 오르는 벽, 로프 한 가닥에 목숨을 매달고 오르는 산 사나이가 마주하는 빙벽이거나, 역사적 슬픔이 배어 있는 추모의 벽 같은 구체적인 사물과 대상으로서의 벽이 있다.

다른 한편 추상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벽도 있다. 플라톤이 ‘이데아론’에서 설파한 동굴 속 수인이 마주한 벽, 청춘이 부딪는 좌절의 벽, 갑과 을 간 신분을 가르는 벽,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로 막는 벽….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삶의 터전이야말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城砦)와도 같지 않은가.

살면서 몇 차례 벽을 맞닥뜨렸다. 내가 부딪은 최초의 벽은 중학교 입시였다. 명문으로 꼽힌 K중학교에 응시했다. 주위의 기대를 모았지만 그 학교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올라온 상고머리 소년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2차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나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는 트라우마의 바닥에 자리한 진원(震源)이었다.

대학 입시 때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보았다. 유명 대학인 S법대에 낙방한 것이다. 사춘기를 거치며 충격이 컸으나 중학교 때처럼 마음을 상하지는 않았다. 2차로 대학에 진학해 그런대로 분위기에 적응하게 된 것도 마음을 가볍게 했다. 초등학교 때처럼 남녀공학 교실에서 여학생과 옆자리에 함께 앉아 숨죽이며 프린트 물 교재를 뒤적이는 기분은 새로운 설렘이었다. 그에 더해 마음에 둔 여학생도 생겼다. 내색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사랑이었지만.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 무렵 나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용기를 내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다. 가사를 돕는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 말씀인가요? 스키 타러 대관령에 가셨는데요.” 1960년 대 중반 12월 어느 날이었고, 가난한 청년에게 좌절을 안겨준 신분과 계층의 벽이 흐릿한 모습을 드러내며 거인처럼 다가왔다.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하는 벽은 뼈아프다. 신혼 초였으니 사뭇 오래 되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와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내가 쓴 메모를 발견했다. 내용이 뜻밖이어서 놀라웠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내 신세가 처량하고 답답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 결혼이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랬었나? 아니, 왜? 메모 글을 읽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 자락 낌새도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에 자책이 한층 더 심했다.

아내를 이해하게 된 것은 시간이 흐른 후다. 어린 아내에게 어찌 당혹스러움이 없었으랴? 삶의 모습, 정체와 형질이 하루아침에 변했는데 즐겁기만 했겠는가. 결혼 전 자유로운 삶에 대한 그리움도 한켠에 자리했음 직하다.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에 대한 이해 없이 그러려니 지나쳐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허물없이 오간 것이라고 믿어온 내가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불통의 벽을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벽이 ‘관계의 단절’이나 ‘능력의 한계’ 또는 ‘가로막는 장애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빗대 쓰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터이다. 벽의 효능과 긍정적 측면을 생각한다. 벽은 못과 장식물의 거처가 되기도 하고, 거미 같은 곤충에게는 삶의 치열한 현장일 수 있으며, 노숙자나 술 취한 가장처럼 일상이 힘겨워 무엇엔가 기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등을 받쳐주는 위안처요 피난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벽은 마주 한 사람에게 답답함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한편 높이와 단단함을 일깨워 도전정신을 북돋기도 한다. 때로 불통을 뜻하는 벽이 관계를 잇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벽을 마주한 사람이 벽을 두드려 벽 너머나 다른 벽 속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교호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암굴에 갇힌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그러했듯.

삶이 힘겹게 다가오면 이사 와서 헤맸던 어두운 골목길, 그리고 수시로 부딪곤 했던 벽을 떠올리곤 한다. 무심한 벽이 침묵으로 말을 건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벽은 그냥 벽이 아니었다. 벽은 머무르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돌아가거나, 넘어가거나, 뚫고 가라는, 그러니까 제발 무엇이든 시도하라는 절절한 시그널이자 기표(記標)에 다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벽을 대하고 버려진 것처럼 느꼈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려진 것은 아니었다. 벽 앞에서 망설이며 머뭇거리긴 했지만 방향을 틀어 다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벽을 만나고 잠시 가늠하다 또다시 되돌아 나오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니 출구가 보였다. 그렇게 해서 큰길로 나서자 돌연 시야가 트였다. 거리는 온통 소리[音]의 잔치, 빛[日光]의 홍수였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