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소리 / 윤재천

 

 

겨울은 여백의 계절이다.

현란한 색채가 머물다 간 자리에 겨울은 우울한 색으로 대지를 지키고 있다. 눈부신 태양 아래서 교만을 앞세우던 세상은 다소곳이 고개 숙여 제 자리를 돌아본다. 그 겸허한 모습마저 눈송이가 포근히 감싸 안는 날이면 우리는 어진 시간 속으로 흘러들게 된다.

잿빛 하늘 아래 눈 덮인 산야는 이제까지의 아우성과 모진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있다. 눈은 사람과 사람, 사연과 사연을 연결하던 교각과 허욕의 빌딩 숲도 순한 모습으로 잠재우고 있다.

헤픈 웃음과 찌든 미소로 불편한 마음의 관계 모순도, 깨끗한 세상에서는 잠시 풀어지리라. 겨울은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신비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은 봄, 여름, 가을의 수많은 색깔을 응축하며 무색의 옷을 입고,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람과 일체가 된다. 자기의 소리에 열중하는 침묵의 작업을 시작한다.

겨울이 간직한 침묵의 소리는 무엇일까. 어느 산수화의 선에 숨겨진 공간이며, 눈보라에 휩쓸려 나뒹구는 일간지 한 귀퉁이 행간의 여백이다. 그것은 산이며, 강이며, 들이고 삶의 그늘에 가려진 진실의 실체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호와 목소리에 현혹되어 왔던가.

색채의 현란함에 미를 잊고, 크고 거센소리에만 귀가 열려 산마루를 돌아오는 메아리의 추억을 잃어버렸다. 말초적인 감각에 밀려 여인의 애련미는 고전이 되었고, 개발이 향수보다 우선하여 고향을 사위게 했다. 그 과정에서 현시적이고 권위적인 가치관은 군력을 지향하기에 이르렀으며, 색채의 향연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였다.

다른 문명과 문화가 유채색이라면 문학은 무색이며 여백의 도구이고, 겨울처럼 내면의 삶이며 침묵하는 파도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도 색채의 유혹이 음습하게 파고들어 사람들이 몰려 내용 없는 실체를 찾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겨울은 침묵의 계절, 봄의 시샘도 여름의 쟁취도 따스하게 품어 안는다. 격랑을 돌아온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는다. 그것은 더 큰 뜻과 더 많은 이야기를 역사의 굽이에 남기기 위한 오늘의 여적(餘滴)이다.

겨울을 어떻게 죽음의 계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침묵이 어찌 죽은 자만의 언어일까.

여백이 사유의 보고이며, 참의미의 실체이듯, 겨울은 안으로 숨 쉬는 계절이며, 침묵으로 웅변하는 우주의 거대한 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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