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통풍이 잘되는 / 박보라

 

 

눈이 빛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탓일까, 아니면 내 정신을 늘어지는 스웨터 속에 걸어둔 탓일까. 요즘 난독증 환자처럼 글자가 자꾸 뒤엉킨다. 때로는 글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글자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독은 오해를 낳는다.

 

우아하고 통풍이 잘되는 음악. 도대체 무슨 뜻이지?

 

기억력이 점점이 물감을 흩뿌린 수채화 같다. 뚝뚝 떨어지는 점마다 바탕 그림을 가리고 원래 그림을 지운다. 경계선이 사라지는 시각. 확신과 자신감 또한 그렇게 사라진다. 윤곽을 또렷하게 하려고 붓질을 더 하다가는 종이가 일어나 더 뭉개질 뿐이다. 괜히 눈을 비빈다. 몇 번이나 눈꺼풀을 껌뻑여도 본다. 그래도 여전히 상황과 상황을,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선은 희미하기만 하다.

시각만이 아니다. 다리에 번지는 푸른 꽃들. 크기도 제각각인 것들의 근원을 찾다가 멈춰 앉은 침대 모서리에서 범인과 마주한다. 뇌의 명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다리가 늘 그 자리에 있던 침대 모서리에 자꾸 충돌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하얀 피부엔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검고 붉고 푸른 소우주가 탄생한다. 신기한 건 통각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충돌의 상처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 어떤 열기나 폭발음도 나지 않는다. 소우주의 탄생은 이처럼 무딘 것이었나.

언젠가부터 양쪽에 사람을 두고 앉지 않으려고 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야기하다가는 가상현실 게임을 하듯 멀미가 난다. 어쩌면 이토록 빠른 세상은 이제 내겐 가상 현실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웃는 그림이 그려진 상자가 도착했다. 남편이 또 뭔가를 주문한 것 같았다. 그 안엔 머리뼈 교정기 같은 물체가 들어있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가상현실 기기에 안경을 연결하는 장치란다. 얼마 전 노안으로 새로 맞춘 다초점 렌즈 안경을 쓰고도 여전히 가상 현실에서 속도를 즐기는 남편이 흰머리를 한 피터 팬 같다.

내 뇌 속의 브레이크 패드를 갈 때가 되었나. 아무리 빨리 밟는다고 밟아도 완전히 정지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점점 정지선을 넘기거나 내가 원하는 위치에 적절하게 안착하지 못한다. 단어가 빠져나간다. 생각이 도망가 버린다. 그것들을 찾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만, 속도가 다른 그것들은 이미 다세계 속으로 각기 흩어져 버린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난 지금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걸 체험한다. 또 다른 우주에 사는 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평행 우주가 내 다리에서 펑펑 터져 탄생할 때에 드디어 시간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전능자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다는 말을 시간의 개념이 다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시간은 육체를 입은 우리에게만 흐른다. 그것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진행한다. 서서히 세포 분열을 멈춰간다. 시간을 세는 건 인간만 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던가. 식물과 동물은 시간을 세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양자역학에선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건 동체 시력이 떨어지고, 그에 대한 반응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중력은 시간을 왜곡한다. 그러면 삶의 질량은 중력을 키워 힘든 시간은 느리게,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가게 하는 건 아닐까. 인류가 밝혀낸 태초의 비밀 앞에 느리게 흐르던 내 생각이 재빠르게 돌진한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드디어 창조의 순간을 목도하려는 찰나, 모든 생각이 갑자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웜홀을 지나 다시 제자리다. 머리가 멍하다.

3차원 세계에 사는 내 생각의 한계다. 물리학자들의 말처럼 4차원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가늘고 길게 뚫린 창으로 내다본다. 내 우주 속에선 옛 기억으로 출발해 음악을 듣고 있는 현재의 나를 지나 상상으로나 만나볼 수 있는 미래까지 사선으로 화면이 흐른다. 정확히는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빗방울이 갈겨놓고 간 창문을 통해 본 풍경은 윤곽선을 뭉개버린 윌리엄 터너의 그림 같다. 선명한 사실을 그리기보단 그 느낌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완벽주의가 내 몸을 시간이란 돛대에 묶고 폭풍 속에 내던진다. 공포에 휩싸여 또렷한 기억도, 적확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지만, 몸에 직접 부딪히는 느낌만은 강렬한 문신처럼 새겨진다. 육체의 세포 분열은 멈출지 몰라도 감정의 세포 분열은 지금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순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뜨고 찬찬히 다시 읽는다. 우아하고 통풍이 잘되는 ‘공간에서 듣는’ 음악.

 

제대로 읽고 나니 왠지 감정이 밋밋해진다. 다시 읽지 말 걸, 후회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상상한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과 속도에 의존하지 않은 채 음악을 듣는다. 우아하고 묘한 음악이 숭숭 뚫린 내 몸과 마음을 휘돌아 나간다. 그 바람에 다리에 핀 푸른 꽃도 점점 옅어진다. 오독이 낳은 오해를 즐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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