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 / 강돈묵

 

떨기나무의 키를 넘지 않는다. 바위의 옆구리를 스치듯 질주해도 허리쯤을 가로지른다.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그 이상 높이 나는 법이 없다. 이런 낮은 자세는 제어된 삶 탓인지, 스스로 겸손의 길로 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생의 죄 때문인가. 이생의 허물이 너무 큰 탓인가. 언제나 고개 숙이고 땅만 바라보며 나댈 뿐이다. 그것도 대낮에 나대는 일은 거의 없고, 저녁 무렵 남들 다 귀가한 후에 골바람처럼 지나간다. 저녁연기 자욱한 부엌 궁둥이로 돌아간다. 늘 칙칙하고 음습한 곳만 찾아다닌다. 몸에 두른 옷가지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그을음 가득한 굴뚝에서 빠져나왔는지 몸빛이 어둡다. 작은 몸뚱이지만, 늘 꼬리를 추켜세우고 촐싹거리는 모습이 바라보는 눈까지 불안하게 한다. 금시 큰일이라도 저지를 듯이 서두른다. 무엇인가 획 지나갔다 싶어 얼른 눈을 주면 저만큼에서 꼬리를 세우고 앉아 있다가 바로 날아간다. 둥근 몸뚱이보다 추켜세웠던 꼬리가 더 눈에 삼삼하다.

인가로 내려와 보릿고개나 넘듯 먹이활동을 하던 굴뚝새. 잡목 밑의 눈마저 녹아 버리고 온 산에 진달래 빛이 너울대면 어김없이 굴뚝새는 인가에서 먼 곳으로 유랑을 떠난다. 그 고질적인 바람기가 도진 것이다. 봄바람이 숲정이를 감아 돌면 봄 향기에 취해 사랑 찾아 떠났는지 볼 수가 없다. 높새바람에 얹어 갔나. 독수리를 타고 갔나, 굴뚝을 드나들던 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소 높은 산, 습한 계곡에 도착한 굴뚝새는 분주하다. 이른 새벽부터 관목 숲을 뒤지며 먹이를 찾는다. 딱정벌레도 좋고, 옆새우도 좋다. 벌레 몇 마리로 끼니를 때운 다음 집짓기를 서두른다. 암벽 틈에 번식 둥지를 만든다. 나무뿌리를 물어다가 골격을 만들고, 솔잎과 부드러운 풀로 벽체를 덧씌운다. 역시 잠재울 수 없는 바람기는 눈물겹다. 신부를 향한 끝없는 마음은 이끼를 뜯어 치장한다. 둥글게 포근한 집을 짓고 옆으로 대문을 내면 암컷을 맞을 번식 둥지는 마무리된다. 이제 암컷을 유인하면 되는 것이다.

암컷이 멋진 둥지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내를 좋아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풍류를 알고 주거를 해결한 사내이니 든든하지 않겠는가. 수컷은 자신이 만든 둥지 앞에서 독특하고 복잡한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소리치고는 우렁차다. 암컷이 가까이 찾아오면 날개를 반쯤 펴서 펄럭이며 친절히 유인한다. 그 모습은 간절하기 이를 데 없다. 꼬리를 쳐들면서 고운 목소리로 정겹게 속삭인다. 둥지 입구를 가리키며 들기를 청하는 모습이 세련되었다. 사내가 마음에 들면 암컷은 둥지 안으로 들어간다. 깊은 사랑을 나누고 나면 거기서 끝이다. 수컷은 오르가슴을 뒤로 하고 둥지를 나서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파트 한 채 주고 떠나는 셈이다.

홀로 남겨진 암컷은 깃털과 나무뿌리를 주어다가 산좌(産座)를 깔고 알을 낳는다. 이미 떠나버린 사내를 기다리고 원망한들 한(恨)만 쌓인다. 홀로 예닐곱이나 되는 알을 보름 동안 품어 부화시킨다. 그리고 산후조리할 겨를도 없이 새끼들 키우는 일에 전념한다. 암컷이 육아로 고생할 때 수컷은 다시 둥지를 짓고, 다른 계집을 유혹한다.

먼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이번에는 큰 나무뿌리에 근사한 둥지를 만들고 그 멋진 목소리로 암컷을 부른다. 이번에도 안락한 둥지와 우렁찬 노랫소리에 넘어간 암컷이 한 많은 육추(育雛)의 짐을 떠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컷의 사랑놀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능력 있는 자는 일여덟 개의 구애 둥지까지 짓는다.

이토록 세상 모든 일 저버리고 한철 사랑놀이에 빠지지만, 나름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큰 새들이 즐비하고, 빠르고 용감하기로 소문난 맹금류가 많다 해도 새의 왕은 다름 아닌 굴뚝새다. 제아무리 몸집이 큰 새라 해도 이 새의 재주와 잔꾀 앞에서는 멈칫할 수밖에 없다. 빨리 달리기를 해도 멧돼지의 목을 타고 가서 마지막 순간 내달렸고, 높이 날기를 해도 독수리의 등에 붙어 가다가 창공에서 홀연히 치솟았다. 어떤 내기를 하든 잔꾀가 있어 큰 상대를 앞지른다. 경주에서 이긴 굴뚝새가 마침내 새의 왕으로 칭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굴뚝새는 자만에 차서 사랑놀이에 빠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난 삶의 업보를 어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자식만 내지르고 나 몰라라 했던 아비 주제에 자식 앞에 어찌 나설 수 있으랴. 날짐승 중에서 바람기로 치면 첫째일지 모르겠으나, 한 세월 계집질만 한 까닭에 굴뚝새는 추운 겨울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 고개 한 번 제대로 쳐들지 못하는 꼴이 추위 속에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오늘도 굴뚝새가 골바람처럼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몸빛이 어두운 것을 보니 엊저녁도 굴뚝 속에서 지낸 모양이다. 이 추운 겨울 굴뚝 안에서 견딜 줄 아는 걸 보니 제법이다. 그래도 오늘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할미새처럼 촐싹거리며 ‘찟 찟’ 울음소리가 맑으니 다행이다. 스스로 봄여름 동안 살아낸 삶이 부끄러워 나대지도 못하고 그늘 속에 묻혀 사는 굴뚝새. 해 질 무렵 어스름 속에서 먹이를 찾고, 높은 하늘도 포기하고 낮은 자세로 사는 모습이 애처롭다. 가족 하나 없이 언제나 혼자 골목길을 드나든다. 창가를 지나는데 방안의 풍경이 달려들어 날개깃을 후려친다.

방안에서는 꼬마 아이가 그림책 『가시고기』를 보고 있다. 그림 속의 가시고기는 밝은 갈색으로 아비가 새끼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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