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빵집 / 박관석

 

오래된 빵집이 있다. 간판도 없는 그 집에선 한 가지 빵만 만드는데, 말이 빵이지 울퉁불퉁 못생겼고 속은 껍질이 가끔 씹히는 통팥을 넣은 볼품없는 것이다. 가게라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는데 사십 년 넘게 버텨온 데는 그 집만의 비밀이 있을 법하다. 요즘 빵은 맛뿐 아니라 모양과 색깔도 특이하다.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라 독특해지고, 오랜 맛, 옛 모양 그대로 답습하다간 빠르게 변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밀리기 십상이니 화려해졌다. 물론 옛 맛을 고수하는 곳이 있긴 해도 몇 군데뿐이고 그마저도 대기업의 분점에 밀려 사라지기 일쑤다.

유명 맛집은 저마다 음식의 유래(由來)가 있다. 한쪽 벽면을 깨알같이 채운 글씨는 유명한 왕실 요리사로부터 전수되었다거나, 전쟁 통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때론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전설이 적혀 있기도 하지만 이 빵집은 그런 글귀 하나 붙여둔 것이 없다. 언젠가 궁금증이 생겼지만 덮어두었다. 우연히 만들었다 손맛이 좋다는 칭찬에 계속했다는 뻔한 유래보단 이슬만 먹는 첫사랑 여인에 대한 순진한 총각의 상상처럼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좋다는 걸 살면서 깨달은 탓이리라.

다양한 맛집이라도 공통점은 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다. 물론 그 빵집도 예외가 아닌 게 우리 땅에서 난 재료만 쓴다거나, 생산지를 따져가며 먼 길도 마다치 않는, 그도 아니면 직접 가꾸고 수확해야만 안심하는 주인장의 고집을 익히 알고 있어서다. 험한 세상에 던져져 본질이 왜 중요한지, 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윤에 무너지지 않아야 오래갈 수 있다는 진리를 그녀를 통해 몸소 깨우쳤다.

갓 스물에 고향을 떠났다. 타지를 돌며 일을 배웠고 터를 잡고 눌러앉은 곳도 타향이었다. 사업을 하니 난관에 부딪히기도, 넘어지기도 했다. 무릎이 깨지고, 어느 날은 힘에 부쳐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무리를 한 허리가 고장이 났고, 수술 후 합병증도 생겼다. 우울증이 왔고 잠과 함께 식욕도 앗아갔다. 야윈 몸과 마음, 어떤 음식도 넘기기 힘든 그때 혀가 기억하는 맛이 있었다. 울퉁불퉁 볼품없는 외관, 가끔 질긴 통팥이 씹히는 그 집의 빵 맛이었다. 하지만 분점도 없고 인터넷 주문도 안 되는 빵을 당장 맛보기는 어려웠기에, 그저 흔한 팥빵이 대신할 수밖엔 없었다.

세상은 평범하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할 때가 있다. 코로나의 재앙이 그랬다. 만남이 어려워지고, 온기와 위로를 전하던 손과 입은 바이러스 매개체로 치부되어버렸고, 텅 빈 거리엔 무서운 눈초리만이 돌아다녔다. 문 닫는 상점이 늘고 골목 상권이 무너진 곳엔 눈물이 강을 이뤘다. 오래된 상가, 허름한 집, 이윤에 서툰 곳일수록 더 그랬다. 결국 그 빵집도 역풍을 피하진 못했다. 몇 안 되던 손님마저 끊긴, 그 집 안주인에 대한 소식은 좀 더 야위고, 허리는 굽고, 계단을 오르기에도 숨이 차다는 것뿐이었다. 언제 다시 문을 연다는 기약도 없고, 이틀이 멀게 코로나 환자와 접촉한 나도 찾겠다는 약속을 미뤄야 했다. 소리 없이 지나던 봄의 끝자락, 끊임없는 낙수가 단단한 바위를 뚫듯 만남에 대한 수많은 염원이 모여 백신이란 작은 희망의 공을 쏘아 올렸다. 그 덕에 난 다시 빵집에 들를 수 있었다. 녹음이 짙어진 나뭇잎 새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대로(大路)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집이건만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듯했다. 조금 더 허리가 굽고, 손이 거칠어지고, 주름이 늘어난 안주인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였다. 한시도 잊을 수 없던 그분과 긴 포옹을 했다. 어색함에 가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행동이었다. 생각보다 야윈 주인의 몸이 서글펐다.

후회는 늘 등 뒤로 남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표현이 서툴렀다. 주뼛대는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았고, 따뜻한 손은 등 뒤에 감추어 두었다. 세련되지 않고 투박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건만 밖으로 끄집어내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소중하게 만든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꺼내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해 기대하던 빵은 먹을 순 없었지만, 다행히 유래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 병치레가 유독 잦아 야윌 대로 야윈 큰아들이 빵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봤단다. 헐렁한 주머니를 털어 하나를 샀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바쁜 중에도 짬을 내 빵 만드는 법을 배웠고 그게 팥빵이 탄생한 유래였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 탓에 아들들의 빵 타령이 잦아질수록 안주인의 숨은 밥 속엔 조와 보리의 수가 늘어만 갔다.

잡힐 듯한 바이러스는 기세를 꺾진 않았다. 아직은 우리 곁에 늘 있어 깨닫지 못했던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자주 들르지 못하는 단골손님에 대한 배려로 빵집 안주인은 짬을 내 우체국에 들렀다. 며칠 뒤 고향에서 온 택배가 도착했다. 수북이 쌓인 물건들 속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투명한 비닐 속에 가지런히 자리한 하얗고 동그란 그것,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이다. 행여 누가 낚아챌까 얼른 냉동실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한마디한다.

“아이고 그 빵은 아무도 안 뺏어 먹어요. 우리 가족이면 당신이 어머니가 만드신 그 빵을 얼마나 좋아한다는 걸 아는데 무슨 소릴 들으려고.”

이번에는 또 어머니가 무얼 이렇게 많이 보내셨나 혼잣말하며 하나하나 꺼내 보는 아내를 등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뉴스에선 코로나 확진자가 이십만 명이 넘어가고 고령의 사망자가 늘어간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이 칠흑같이 어둡고 더딘 시간은 언제나 지나가려나. 내가 믿는 하나님께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비록 볼품없고 한 종류 빵만 만들지라도 그 집이 아주 오래도록 문을 닫지 않게 해 달라고.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