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의 칸나 / 김정태

 

잊은 지 오래된 시간도 그 안에 풍경은 살아있다. 말하여질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은 풍경으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그해 여름의 칸나가 내게 그러하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들조차도 혀를 내밀며 기진해 있을 팔월의 태양, 그 아래서 칸나는 꽃을 피웠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에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긴 어느 지점의 풍경은 있게 마련이다. 그 시절 아무런 대본도 없이 자신의 본능이 연출하는 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참담한 이야기를 꾸역꾸역 만들어가고 있었다. 삶의 혼돈 속에서 어제나 그제나, 맞닥뜨린 오늘이나 한지에 배어드는 먹물처럼 나의 생활은 예상치 않았던 무늬들만 만들어 가고 있었다. 30여 년이 훌쩍 넘어선 세월인데도 그 대책 없던 무늬는 살아 기억의 저편에 풍경으로 남아 오도카니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해 여름은 더웠고 비가 내렸다는 기억은 없다. 여름인데 어찌 빗줄기 한 줄금 없었으랴. 하지만 시원하게 내리는 비의 기억이 없다. 매일 후덥지근하고 계통 없이 날뛰는 상념은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 정서를 지배했다. 땅을 달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말라가게 했던 태양은 저녁이면 낮은 산에 누워있는 묘지를 적시며 눅눅해졌다. 여름 저녁의 공기는 물을 먹지 않고도 축축하고 무거웠다. 눅진해진 저녁은 노을에 물들었다. 노을은 매일매일 색깔과 질감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만질 수 없는 질감은 무질서한 젊음의 가슴에 박히고 더러는 어제의 그것에 포개졌다.

 

이웃에 위치해 있어 자주 찾는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의 벤치 하나는 나의 시간과 당시의 정서가 포개진 곳이다. 많은 시간이 그곳에서 나를 훑으며 지나갔다. 들러붙은 듯 눌려진 시간은 나를 스칠 때 헐거웠다. 그런 시간과 사위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휘어진 정서는 화단에 피어있는 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칸나는 한낮의 열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대궁을 곧추 세운 채 발갛게 발기되어 어둑해지는 사위를 다스렸다. 노을이 힘을 잃어 갈 때쯤 칸나의 붉음은 대상 없는 욕정을 발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색채의 과학적 논리를 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칸나의 꽃이 진빨강으로 보이는 것은 빨간색의 결핍이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색이란 것은 다가오는 빛 중에 반사되는 것이기에 칸나의 꽃은 빨간색을 갖지 못하는 빛의 결핍인 셈이다. 차마 당시의 날뛰는 정서를 그것에 투영하여 이리저리로 찍어 붙이고 싶지는 않다. 나의 결핍은 무엇인가하고 잠시 스치는 생각에 머물렀을 뿐 바로 놔주었던 기억이다.

 

산 그림자가 운동장을 덮을 때쯤, 베어진 풀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여름 저녁의 궁색한 바람에 실려 지나갔다. 소꼴을 지게 소쿠리에 수북이 실은 고단한 한 삶이 어둑한 저만치에서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이곤 했다.

 

결정된 그 아무것도 없었기에 놓인 길은 많았다. 길은 책 속에 있지도 않았고 끼적이는 노트 속에 있지도 않았다. 눈이 빨갛도록 비벼대며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한 장의 종이를 글로 채우고 다시 읽어보면 도무지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시절 끼적이던 ‘시’라는 생물生物, 그것을 써놓고 또 한나절을 눈만 끔뻑이며 앉아 있는 것이다. 다시 읽어보며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 집어던진다고 개도 안 물어갈 사물死物. 길은 늘 밖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여섯 번의 언론사 시험, 더 많은 횟수의 시 응모, 함께 묻혀 버무려진 시간들이 거기에 눌어붙어 있었다.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길들도, 밖에 있는 많은 길들도 아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선뜻 들어설 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길을 바라봐도 무엇 하나 집중되어 있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이리저리 분산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지나가고 있는 젊음의 어느 여울목에서 안쓰러움만 키워가고 있었던 거였다. 물론 훗날에 무질서한 내 삶의 한 시대로 정의함은 지나온 계절들의 포개짐이 얇지 않은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길이 많다고는 해도, 길이란 것이 원래 처음부터 임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보이는 길을 다시 들여다보면 보이던 길은 다시 알 수가 없는 길이었다. 여름날의 농사일처럼 해도 해도 표시는 안 나고 다만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만을 안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을 지금으로 불러올 수 없다. 미래에서 다가오는 시간 역시 만질 수 없고 먼저 다가서 찌를 수 없다. 당시 맞닥뜨린 시간들은 풀어져 헐겁고 흐릿하다. 그저 칸나를 바라보던 스물일곱의 대상 없는 성욕은 칸나를 여성화시켰지만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시간이 바스러지듯 무참하게 모습을 감췄다. 참으로 뜬금없고 허망한 욕심이다.

 

어쩌면 당시의 분산되어 명료해질 수 없는 정서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꾸역꾸역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갈 건지 말 건지, 또 걷기로 작정한 그 길이 내가 임자이긴 한 건지, 널뛰듯 하는 망설임의 순간에도 칸나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 슬그머니 풀어버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붉은 칸나를 대중없이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그 붉음을 가져와 새로운 의지를 불태운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그해 여름의 칸나를 바라보며 한껏 발기했던 붉음을 잃어 추레해져도 제 몸의 대궁에 붙어 있는 꽃잎을 보았다. 그해 여름에 내가 건진 가장 값진 풍경이다. 그 풍경을 새길 때에도 햇볕은 깊고 힘셌다.

 

길은 생뚱맞은 곳에도 뻗어 있었다. 어느 날, 손때가 묻은 신학교 편입 원서를 맨 아래 서랍에 넣고 잠갔다. 서울 행을 택하고 허리에 매달린 허망을 여름이 가며 풀어놓았다. 그렇다고 홀가분한 기분은 아니어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은 무겁고 칙칙했다. 그해 여름은 칸나의 피고 짐과 발기와 시듦을 거듭하는 것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 들른 모교인 초등학교 교정은 맑았다. 초가을로 접어든 운동장은 그해 여름의 그것처럼 까불대지 않았다. 밤새 내린 안개가 일찍 걷혔다. 가을로 들어선 풍경은 화단에서 내놓는 순하고 맑은 공기로 공란 없이 채워져 있었다. 잊었던 그곳에 칸나는 피어 있었다. 학생 수가 번성했던 시절의 십 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교사校舍며 화단은 그대로다.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붉음의 극한으로 치닫던 색도 그저 붉은색이다. 한쪽 대궁에는 붉음을, 옆 대궁에는 지는 갈색을 함께 내놓고 있다. 대상 없던 젊음의 욕정과도 같았던 붉음은 안으로 삭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긴 세월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돌이켜 보면 가지 못한 길은 아깝고, 가지 않은 길은 아쉽다. 그러한 지나온 삶에서 이쪽을 택했든 저쪽을 택했든 어떻게든 내 삶은 이어져 왔을 것이다. 또 그렇게 지나오며 불혹의 나이를 거쳤을 것이고 지금처럼 이순의 나이를 넘었을 것이다. 순간순간 삶의 길이 달라지는 중요한 결정들이 있었겠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당시에 느꼈던 요동치던 정서는 그렇게 겁낼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이 가야할 길이 좁고 험하다는 당시의 보편적 상황이 어찌 보면 무위도식으로 벤치에 앉아 칸나나 바라보고 앉아있는 나 자신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요동치는 정서보다는 그 대책 없는 적막이 무섭고 싫었다.

 

덥고 지루한 올 여름도 끝이 보인다. 지난해 늦가을 지인으로부터 얻어온 칸나 구근을 포대에 담아 다용도실에서 겨울을 나게 했다. 올봄 방 앞의 화단에 구근을 심었다. 대궁이 굵어지고 잎이 맘껏 자리를 넓히더니 보름쯤 전부터 붉은 꽃잎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날 여름의 저 붉음은 어지간히도 진했다.

 

지나간 시간들이다. 돌이켜 부술 수 없다. 또한 다가올 시간도 먼저 가서 찌를 수 없다. 앞에 다가오면 스쳐 보내고 더러 만질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해 여름의 칸나의 기억은 이제 멀고 흐리다. 다만 학교 앞 문방구점 구석자리 두더지게임의 두더지 머리처럼 불쑥 튀어나왔다가 한 대 얻어맞고 움츠러든다. 당시 빈곤한 내 정서의 드러남이 두렵던 기억도 지워졌다.

 

창문에 새겨 놓은 듯 피어 있는 내 안식처 앞의 붉음 옆에서 퇴색해가는 시간을 더듬어 본다. 퇴색하여 갈색이 됐든 아니면 다른 어떤 색이 됐든, 나를 나이게 하는 구성물 중의 하나로 눌어붙어 있는지는 칸나 꽃잎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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