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순례 (금낭화) / 김이랑

 

참 곱기도 해라! 고운 용모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색시를 보면 절로 구르는 말이다. 부러움과 샘뿐만 아니라 저토록 고운 색시를 맞은 낭군은 누굴까, 시어머니는 누굴까 하는 상상까지 예닐곱 자 감탄에 고스란히 함축되어있다.

분홍빛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찬 들풀을 본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라며 줄기를 곧추세워 낯을 한껏 치켜올렸다면 여느 꽃이려니 여길 테지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참한 색시 같아 마음이 자꾸 끌린다. 이슬에 몸을 씻고 바람의 손길을 받아서일까. 안팎을 잘 다듬은 규수처럼 몸맵시도 곱다.

금낭화는 손톱만 한 꽃이 아래로 내리 핀다. 고개 쳐든 사랑보다 고개 숙인 사랑이 더 곱다고, ‘♡’ 모양의 꽃이 가지에 줄지어 조롱조롱 열린다. 피를 흘리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서양에서는 블리딩 하트(bleeding heart)이다. 꽃자루가 배신당한 여인의 한 같아 그 모습이 처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금낭화는 꽃말도 겸손하다. 줄을 지어 매달린 꽃이 마치 님 오시는 길에 길게 내건 연등 같다. 홍사초롱 밝혀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반걸음 뒤에서 가시는 길 밝히는 여인, 옛사람들의 삶에서 이는 복종이나 추종이 아니었다. 당신을 향한 존경이며 겸손한 따름이었다.

금낭화는 꽃자루를 좌우로 하나씩 어긋나게 배치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면 꽃끼리 부딪칠 터, 자식들끼리 서로 치고 박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씨방이 다 익으면 껍질을 두 갈래로 갈라 톡 소리와 함께 씨를 멀리 퍼트리는데, 이 또한 가까운 자리에서 골육상쟁하는 비극을 피하려는 지혜다.

씨앗은 작지만 그 안에 우주 하나를 품었다. 해달별의 순행에 맞추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가 성품이 되고, 숱한 비바람을 견딘 몸이 자태가 되어 금낭화 또한 자기만의 질서를 이룬다. 나는 금낭화에서 내면과 외면의 질서가 조화를 이룬 여인을 본다.

금낭화를 베란다에 들인 적이 있다. 곁에 두고 보겠다는 욕심에서다. 그런데 물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금낭화는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지고 말았다. 자생할 조건이 맞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들꽃이 가진 질서를 모르는 내가 문명의 질서를 강요했던 탓이다. 숲에서는 초롱초롱한 금낭화에게 아파트 베란다는 감옥이었던 셈이다.

사람도 오래도록 자연의 순행에 따랐다. 봄이면 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가꾸고 가을이면 거두었다. 그 열매를 양식으로 겨울을 나며 푹 쉬었다. 필 때 피고 질 때 지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기다릴 때 기다리는 삶을 누렸다. 그래서 문화도 자신이 사는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요즘에는 문명의 질서에 맞춰 산다. 문명의 질서에는 스물네 절기가 없고 낮과 밤도 없다. 문명이 주도하는 속도에 맞추려니, 달력 한 장이 금세 넘어간다. 꽃이 피면 들로 가고 단풍 들면 산으로 가지만 그것은 하루 위안일 뿐이다. 대낮 같은 밤거리에 때아닌 맴맴 소리가 들려 가로수를 쳐다볼 때, 빌딩 즐비한 숲에서 자기 질서를 잃은 매미가 나와 같아서 마음이 공명共鳴한다.

복종, 맹종, 굴종, 추종, 인간의 질서에는 이러한 낱말이 많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참꽃을 노랑으로 피라고 떠밀고 개나리를 빨강으로 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스스로 생존할 자기만의 질서를 이루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사람,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사람, 인간이 만든 질서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고화질 TV 시대다. 손가락 하나만 누르면 모든 영상이 안방까지 배달된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열면 들꽃이 천만 화소로 눈앞에 실감 나게 펼쳐진다. 하지만 감상의 결은 발품을 팔아 산과 들에 자생하는 꽃을 보던 흑백시대의 그것과 다르다. 그림은 그림일 뿐, 정밀한 영상일지라도 꽃이 피기까지 인고의 향기와 그 질서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런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내가 초록이니 너도 초록으로 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초록을 바탕으로 제 마음껏 제 색깔로 피라고 배려한다. 그리하여 참꽃은 분홍으로 개나리는 노랑으로 목련은 하양으로 핀다. 들꽃은 다른 꽃이 만발할 때 다투어 피지 않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씨를 지녔다.

이어서 산꽃·들꽃 줄지어 피어날 테다. 찔레꽃, 함박꽃, 쥐똥나무꽃, 때죽나무꽃, 산딸나무꽃, 그러면 나는 이들을 찾아 그 질서를 읽고 여름에 피는 까닭을 물어봐야겠다. 이 행로는 네온사인에 휩쓸리는 일상에서 내 영혼의 색깔을 찾는 순례길이다.

 

<좋은수필> 2022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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