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 / 노병철

 

 

시월 대보름. 그가 태어났다. 그날 달은 유난히도 더 밝았다. 정월 대보름에는 대동 화합을 기원하고 칠월 보름은 백중이라 하여 머슴을 챙기고 시월 보름에는 묘제(墓祭)를 지내는 등 조상 공경을 하는 보름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않는가. 그래서 그를 조상의 은덕으로 태어 난 놈이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위인들은 다 신동설화가 있고 그에게도 걸맞은 탄생신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탁발승이 이 아이는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이라고 했단다. 키만 크게 될 줄은 당시엔 아무도 몰랐었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어진다고 하지만 그렇게 멀어질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는 데이트 첫날 뼈 해장국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여자를 여태 본 적이 없었다. 큰 뼈다귀가 그녀의 입속에 들어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나오는 게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는데 그녀는 그가 반해서 그렇게 쳐다보는 줄 알았다고 했다. 뼈다귀 잘 빠는 여자에게서도 그의 몸에 도파민이 생성될 줄이야. 너무 많이 흘러나왔는지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였다. 도무지 단점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또한 그의 큰 허우대만 보고 나중에 힘은 좀 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둘은 결혼 이란 것을 했다.

결혼기념일은 결혼을 정말 잘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날이지 지지리 궁상떠는 부부들에겐 크게 기념될 만한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결혼한 날을 기념일로 만든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마는 결혼기념일에 더 싸운다는 부부들이 늘고 있단다. 결혼이란 같이 사는 기간이 길어야 이십 년 남짓 되는 때에 만든 제도인데 이젠 오십 년을 같이 살아야 하니까 경상도 말로 서로 물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음식도 같은 것을 매일 먹으면 물리고 코흘리개 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꿔줘야 떼를 안 쓴다는 것은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배들은 죽으나 사나 조강지처라면서 억지로 맞춰 살기를 권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주례용어는 이제 조선 시대 칠거지악 이야기랑 같이 사라진 풍습이 된 지 오래인데도 말이다. 요약하자면 결혼은 더는 그와 그녀에게 기념될만한 날이 아니었다.

불같은 사랑은 여름날 두부처럼 쉽게 상한다고 했던가. 더 이상 그들에게 도파민은 생성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궁합 보러 갔다가 둘이 혼인하면 딸이 삼 년 안에 죽는다고 해서 혼비백산했었다. 그래서 끝까지 반대하는 통에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그때 돌아섰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삼 년 안에 죽는다는 그녀는 삼십 년 내 옆에 있다. 명이 상당히 긴 여자다. 궁합 본 점쟁이를 찾아가 패 죽이고 싶다. 요즘은 가끔 거실에서 만나 집안 대소사만을 챙기면서 서로서로 안쓰러워하고 불쌍하게 보는 눈으로 안부만 묻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어디라도 아프면 서로 피곤해지는 것을 우려해서 그런지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건강을 챙긴다. 하지만 둘은 안다. 아프면 바로 요양원으로 보따리 싸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요즘은 거의 매주 경조사에 참석한다. 부조하다가 집구석 거덜 낼 판이다. 나이가 자식들 결혼 시키고 부모님 돌아가실 시기라 연일 바쁘다. 장례식장에 가 보면 그렇게 슬픈 모습이 아니다. 상주조차 웃고 떠든다. 생애 마지막 잔치였던 환갑잔치가 거창하게 열리던 시절에는 칠십만 넘어도 호상이라고 했는데 팔십이 넘어서 돌아가셨으니 눈물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결혼식장에서는 신랑 신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간다. 저들은 자기 옆지기가 오십 년 동안 금붕어 똥처럼 떨어지지 않고 붙어 지낸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알고는 저런 웃음이 나오지 않으리라. 좋은 남자가 일등 신랑감은 아니며 얼굴 예쁜 여자가 절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들은 모른다. 결혼은 열정스런 사랑의 불꽃을 마구 태우는 것이 아니라 밋밋한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할 것이다. 신동 설화를 가진 허우대만 멀쩡한 그는 늦은 밤 달빛을 맞으며 괜한 걱정을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만 있기를 원한다면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 은은한 달빛을 즐겨야 만이 오십 년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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