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 / 김태길

 

 

2층 유리창 아래는 바로 큰 한길이다. 길은 동서로 뚫여 있다. 이미 많은 대열이 지나갔고 지금도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서쪽에서 동족으로 행진하는 사람들과 동족에서 서족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엇갈린다. 동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제각기의 평복으로 차린 군중이다. 그들은 도보로 걸어가고 있다. 서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군복 차림의 장정들이다. 그들은 군용 트럭 또는 장갑자동차를 나누어 타고 호기롭게 행진하고 있다.

대열에 끼여 행진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결같이 분노의 흥분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분명히 서로 미워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들은 서로 고함을 치며 나무란다. 그러나 차분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나는 2층에서 그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2층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도 모두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무슨 행렬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저렇게 서로 미워하며 맞서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묻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들은 말이지요……”하고 약간 큰 목소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려는 어떤 친절한 마음이 발동한 모양이다. 모두들 그 목소리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약간 유식해 보이는 그런 풍모의 인물이었다.

그 유식한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저 대열의 사람들은 본래 모두 같은 편이다. 동쪽으로 가는 사람들과 서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서로 같은 편일 뿐 아니라 그들은 모두 으리 2층의 구경꾼들과도 본래 한 편이라고 그는 가르쳤다. 행렬 속의 사람들이나 대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모두 다같이 남북으로 뚫린 길을 걸어 같은 목적지로 가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다.

“같은 편이면 왜 저렇게 서로 반대합니까?”하고 어떤 깐깐한 목소리가 물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하고 유식해 보이는 사람이 대답을 한다. 그 두 가지 이유의 하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의 차이라고 한다. 즉, 한편에서는 동쪽으로 가야 빠르다 하고 다른 편에서는 서쪽으로 가야 빠르다고 우긴다는 것이다.

그 이유의 또 하나는 약간 은밀하다. 두 대열의 적어도 한편은 자기네의 사사로운 이익을 크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쪽 또는 서쪽 길을 택하여 가는 도중에서 얻는 이익이 서로 다른 까닭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네의 행로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쌍방에 모두 사심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유식한 사람은 이 물음을 묵살해 버렸고 청중들도 그 물음을ㅇ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는 기색이다.

유식한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창가로 와 몰려갔다. 노상의 두 행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한편에서는 돌을 던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름 모를 기구를 사용하여 연기 같은 것을 뿜어댄다. 한길은 금방 수라장이 되었고 흥분의 여파는 2층에까지 밀려온 듯하였다. 이때, 2층의 출입문이 열리며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뛰어 들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구경만 하시깁니까.” 동쪽으로 가는 대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은 마구 소리를 지른다. “자,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십시다. 양심이 있는 분이라면 우리 대열에 들어오십시오?”

몇 사람이나 되는지는 모르나 2층에서 구경하던 군중의 일부가 그들을 따라 나셨다. 나 자신도 뭔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양심’이라는 말이 소심한 나에게는 꽤 큰 자극이 되었는가 보다. 그러나 어느 길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 머뭇머뭇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군복 차림의 건장한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당신네는 뭐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방관만 하는 거요. 당신네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란 말이요. 우리는 회색분자를 가장 미워하오.”

서슬이 퍼런 그들의 꾸지람에 2층 사람들은 크게 위축을 당한 분위기였다,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히 서 있다. 이때 “자, 우리도 같이 나갑시다.” 하고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이 소리에 이끌리듯 또 몇 사람이 그 뒤를 따라 거리로 뛰쳐나갔다.

내게도 이 이상 더 우물쭈물 할 수는 없을 듯한 강박관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이왕에 늦은 길이니 확실한 것을 알고 태도를 결정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항황 전체를 좀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앞선 것이다.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옥상에서 바라보니 상당히 먼 곳에까지 시선이 미친다. 그 유식한 사람들이 말한 ‘남북으로 뚫린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나는 사방을 두루 살폈다. 과연 저 먼 곳에 그 비슷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워낙 먼 거리에 덜어져 있으므로 동쪽으로 가는 것이 가까울지 그 반대 방향으로 가야 가까울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물아물한 시력을 다시 조정할 생각으로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응시한다. 먼 곳의 안개가 걷히는 듯, 눈 앞이 약간 밝아오는 듯한 느낌이다. 마침내 내 나름의 판단이 섰다.

바로 거리의 대열에 뛰어들까 하다가 2층 그 방에 잠깐 들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판단을 그 곳 군중에게 전하고 행동을 같이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각자의 생각에 따라 거리의 대열 속에 참가한 모양이다. 거리의 인파는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갑자기 초조한 생각이 휘몰아친다. 빨리 내려가려고 서두른다. 그러나 어찌된 셈일까. 발에 신이 없이 맨발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 벗어 놓았는지 기억이 없다. 마침 책상 밑에 헌 운동화가 한 켤레 보였다. 아무거나 대신 신으려 했으나 발에 맞지 않는다. 되는대로 끼고 문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문은 밖으로 잠긴 듯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는다. 뒷문으로 달려가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다 못해 창문으로 달려갔다. 마침 유리창 하나가 열려 있다. 나는 앞뒤를 헤아릴 여유도 없이 그 창밖을 뛰어 내렸다. 눈앞이 아찔하며 잠이 깨었다.

늦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동창이 훤히 밝아 있다. 날씨가 봄날처럼 푹 한 탓인가, 뜰에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이웃 아리들까지 와서 줄넘기가 한창이다. 뒤숭숭하던 꿈자리의 머리도 식힐 겸 옷을 갈아입고 뜰로 나섰다. 어린이들은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그리곤 “아저씨도 줄넘기 같이 하셔요.”하는 것이었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을 범하기에 혼연히 초대에 응하였다.

두 아이가 줄 양단을 잡고 열심히 돌린다. 벌써 몇 어린이가 돌아가는 줄 사이로 뛰어 들어 사뿐사뿐 뛰고 있다. 나보고도 발리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어찌된 샘인지 들어가지지 않는다. 나도 어렸을 때는 제법 잘 했는데 도무지 박자를 낮출 수가 없다. 줄 밑으로 뛰어든 아이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줄은 점점 빨리 돌아간다. 나도 꼭 들어가야 체면이 설 것 같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뛰어들어야 될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세 번 거듭했다. 그리고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기분으로 무작정 돌아가는 줄 밑으로 뛰어들었다. 줄이 발목에 걸리며 몸이 ‘시멘트’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또 잠이 놀라 깨었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흘러 있었다. 다시는 잠이 오지 않는다. 1974년도 이제 다 갔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서글프게 한다. 정말 고개를 들 수 없는 한 해였다. 꿈에서도 그랬듯이,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도 모르고 어물어물 지내 온 한 해였다.

 

#대열 #김태길 #이층 #양심 #한 해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