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 임지영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풀린 끈을 몇 번이나 다시 묶어주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엉거주춤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 운동화 끈이 풀린 채 온 종일 불편하게 다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엄마, 이 운동화 이상해, 끈이 이렇게 잘 풀리는 신발을 어떻게 신어’ 아이는 운동화를 내던지듯 한쪽을 벗는다. 그동안은 끈이 없는 운동화만 골라 신었지만, 이제 아이의 발이 커지고 난 후부터 운동화 끈 없는 신발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현관 문턱에 아이와 나란히 앉았다. 나도 아이와 같은 방향에 운동화를 신고 끈을 풀었다. 끈 묶는 법을 처음부터 알려줄 참이었다.

“내가 하는 거 잘 봐봐.”

운동화 좁은 틈을 통과한 두 끈을 붙잡았다. 천천히 두 끈을 겹쳐 한 바퀴를 돌렸다. 양 끝을 잡고 팽팽하게 잡아 당겨 매듭 하나가 생기게 했다. 손은 운동화 끈에 있었지만 내 시선은 줄곧 아이를 향하고 있었다. 잘 따라하고 있었다.

한쪽 끈을 동그랗게 쥐고, 다른 쪽 끈이 둥근 것을 감싸 공간 사이로 끈이 통과할 수 있게 했다. 이제 천천히 조였다. 리본이 완성되자 아이도 묶었다며 흥분했다. 어렵지 않다며 이제 풀려도 다시 묶을 수 있겠다며 끈을 풀어 매듭 묶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렇게 언제고 어느 때고 다시 묶었다 풀 수 있는 것이 끈이건만, 난 정작 내 마음의 끈이 풀려있어도 그것을 묶으려 시도조차 해보려 하지 않았다. 또 풀렸다고, 꽉 묶여서 불편하다고 불평만 하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언제부턴가 아이와 나의 끈은 신발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만 있었다. 이제는 아무런 말 없이 순순히 엄마 말을 잘 따르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학원도 가야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는 줄 알지만, 게임도 더 오래하고 싶고 친구와도 놀아야 했기에 아이의 시간은 늘 부족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나의 잔소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이는 할 일이 많아져도 하고 싶어 하는 게임과 놀이시간은 포기할 수 없었다. 서로가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매듭을 짓기엔 끈이 짧았다. 스스로 묶은 감정의 매듭부터 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은 끈은 아무리 겹쳐도 리본을 만들 수 없었다. 매듭이 조여지지 않은 신발을 신고는 결국 엉거주춤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끌려가듯 걷는 삶은 즐거울 수 없다. 힘을 모아 함께 뛸 수도 없고, 눈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넘지 못하고 서로의 탓 만하며 넘어진다.

아이와 끈을 묶듯 시간을 풀었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간식 먹으며 한 시간 독서, 독서 후에 게임 30분, 학원 다녀와서 복습 한 시간. 씻고 밥 먹고 잠자는 외에 시간을 아이와 함께 계획했다. 잘 지킨 날은 스티커를 붙여주고 한 달을 모두 스티커로 채웠을 때는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아이의 눈빛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마치 끈을 묶은 뒤의 자신 있다는 표정이었다.

매듭은 조여지면 조여질수록 단단해진다. 그것은 잘 길들인 관계와도 같다. 난 끈을 묶을 생각보다 아이와 끈이 꼬일까봐 문제를 피하기 급급했다. 운동화의 끈처럼 한쪽 끝만 당기면 모든 것이 풀리어 다시 묶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쩌면 내 감정의 매듭이란 것도 처음부터 풀기 쉬웠던 것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끈은 이렇게 묶는다. 나란히 앉아, 붙잡고 돌리고, 시선은 서로에게, 동그라미를 만들고, 공간 사이를 통과하고, 조이고, 꼭 쥐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시 연습하고....., 분명 난 매듭 하나를 만들기 위해 끈을 손에서 잠시도 놓지 않았다. 어떻게 푸는 것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가 내 엉킨 매듭을 풀어주고 묶어주기를 기다리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행동해야 한다. 풀어도 보고, 묶어도 보고, 그 매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한 연습뿐이다. 끈을 손에서 놓지 말자.

아이의 학교를 향했다. 운동장 벤치에 앉은 내 아이가 보인다. 예닐곱 명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잔뜩 웅크린 채 내 아이의 손만 바라보고 있다. 발밑에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갔다. 내 아이는 친구들에게 운동화 끈 묶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자신의 운동화 끈을 풀어 열심히 따라하고 있었다. 나에게서 배운 그대로 아이는 행동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거 잘 봐봐.”

좁은 틈을 통과한 운동화 끈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옆에 아이들이 잘 묶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매듭지어 끈을 한 바퀴 돌렸다. 시선은 친구에게 손은 운동화 끈을 꼭 붙잡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관계의 끈 또한 이러한 익숙함을 향한 노력이라면 서로의 마음에 가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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