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 까는 여자 / 허숙영

 

호박 한 덩이를 앞에 두고 앉았다. 허벅진 여인의 둔부 같이 미끈한 호박이다. 가을에 시어머니가 갈무리를 잘해놓았다. 속을 갈라 긁어 내어보니 바알간 황토색 속이 씨와 엉겨서 나왔다. 호박씨에는 다양한 효능이 있다니 말려보기로 했다. 기억력 증진뿐만 아니라 항균작용에 효과적이라는데 버릴 이유가 없었다.

TV를 보다 심심해지면 가실가실 잘 말려둔 호박씨를 까먹는다. 새끼손톱만한 호박씨를 깐다는 것이 여간 귀찮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 손톱을 세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둔탁한 망치로 두들길 수도 없고 예리한 칼끝으로 자를 수도 없다. 오직 마음을 모아 부러지지 않게 신경을 쓰지만 어느 한 순간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반으로 뚝 부러지고 만다. 버릴 수밖에 없다. 어쩌다 온전한 형태의 알맹이를 꺼낼 때는 괜스레 뿌듯해진다. 그렇다 보니 TV는 보는 둥 마는 둥이고 나는 어느새 호박씨 까먹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반질반질한 겉모습과는 달리 푸르스름한 새싹을 닮은 듯한 속살을 꺼내먹는 호박씨를 발라내는 것은 내면을 드러내는 수필과 닮았다.

나는 호박씨 까는 일이 수필 한 편을 쓰는 일과 같다고 여겨진다.

먼저 잘 익은 누렁덩이 호박을 골라야 한다. 이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 것인가에 해당된다. 주제가 탄탄하지 못하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듯 덜 익거나 모양이 찌그러진 호박은 씨도 여물지 못하다. 그런 다음 호박 속과 뒤섞인 알맹이를 몸통에서 분리한다. 마치 지구에서 뒤죽박죽 얽히고 설켜 사는 우리 삶 속에서 수필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을 가려내듯이 말이다. 어지러이 널린 호박 속은 버리고 알맹이만 속속 추려낸다. 쭉정이나 모양새가 좋지 않은 건 버린다. 주제에 알맞은 소재들만 골라 내 구성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물에 잘 씻어 말릴 일이 남았다. 덜 마르면 미끈거려 손에 쥐고 까기가 쉽지 않다. 햇살과 바람이 잘 들어 마르는 동안 무딘 마음과 다잡아 깎은 손톱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깊은 사유의 시간이다. 오래 생각지 않고 글을 쓰면 매끄러운 글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뒤 호박씨를 조심스럽게 까듯이 종이에 옮겨 적을 일이다. 손톱을 세우고 온 신경을 모으듯 글도 예리한 통찰력으로 적재적소에 적확한 낱말을 골라 써야 한다. 손톱에 가해지는 균등한 힘의 분배처럼 경험이나 느낌, 삶의 깨달음이나 의미가 골고루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온전한 수필 한편을 건지기 위해서 수십 번의 조심스런 손길이 미쳐야 한다. 조금씩 푸르스름한 알맹이가 보이는 듯 하지만 아직은 허연 겉껍질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몇 번의 퇴고를 하듯 그것마저 깨끗이 걷어내야 한다.

드디어 파릇한 속 알맹이를 그대로 살짝 들어낸다. 손바닥위에 어느 한쪽도 찌그러짐 없이 완벽하고 깨끗한 한 알의 호박씨가 얹혔다. 방금 탈고한 좋은 수필을 들여다보는 것같이 흐뭇하다.

호박씨는 금방이라도 새싹을 밀어 올릴 기세다. 그리고는 주저리 주저리 탐스럽게 영글어가던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듯하다. 자드락 가풀막에서 풀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혹독했던 지난여름, 햇볕의 폭거를 견딜 수 있게 호박잎을 거듬거듬 걷어 살짝 덮어주던 할머니 이야기로부터 등에가 행여나 알을 슬어 넣을까 노심초사하던 눈물겨운 투정까지 할 이야기가 많은 듯 입이 뾰조록하다. 온전한 수필 한 편을 읽는 재미가 이럴 것이다. 좋은 수필 한 편을 읽는다는 것은 심신을 살찌우는 영양제가 될 것이다. 호박씨가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처럼.

잘 여문 호박씨하나 온전하게 건져내기 위해 내 손에는 어느새 힘이 실린다.

나는 정말 호박씨 잘 까는 여자이고 싶다.

 

#허숙영#호박씨까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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