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이양선

 

 

밤새 부대끼다 깼는데 아직도 새벽이다깁스를 한 발은 여전히 쑤신다하룻밤 새 퉁퉁 부어 있다정형외과 진료에 한의원 침까지 맞았는데도 발은 눈물이 날 만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 친정어머니도 뵐 겸 조카의 전역을 축하하러 갔다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미리 찬을 몇 가지 장만했다간장게장으로 입소문 난 집은 생각보다 멀었다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쯤 걷는 것은 대수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로 분위기가 달떴다웬일인지 나는 발을 딛기가 몹시 불편했다화목함이 일그러질까 봐 애써 참았다이튿날에서야 먼 길 걸은 적 있느냐는 의사의 말에 게장이 떠올랐다새로 산 구두가 화근이었다어둠 속에 날 새기를 기다리려니 밀려오는 통증에 서글픔이 엄습했다그 속에 절뚝이던 내가 보였다.

초등학교 삼 학년이었던가전체 조회를 알리는 종이 교무실 쪽에서 요란하게 울렸다연속으로 울리는 저 소리는 전교생이 삼 분 안에 운동장에 정렬을 마쳐야 하는 신호였다각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한꺼번에 뛰어 나가는 북새통에 그만 돌부리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 기다시피 교실로 돌아왔다.

그날 수업을 마쳤을 땐 발등이 도도록하게 부은 데다 매우 아프기까지 했다할 수 없이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하교했다마침 사립문에 들어서다 놀란 어머니는 호미 든 걸음으로 급히 나갔다한참 후 돌아왔을 때는 부연 솜털이 난 풀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어머니는 서둘러 돌확에 소금과 풀을 섞어 찧더니 둥글납작한 떡을 만들어 발에 붙여 주었다헝겊으로 돌돌 싸맨 뒤 밤새 즙이 새지 않도록 비닐로 단단히 감쌌다줄기를 자르면 노란 즙이 나오는데 그 빛깔이 애기 똥 같아 '애기똥풀'이라 부른다고 했다.

"발이 삔 데는 그저 애기똥풀이 제일인기라."

아픈 곳이 저항을 하는지 밤에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일정한 간격으로 통증이 일어 앓는 소리가 절로 샜다견디다 못해 몰래 떼어내려다 잠을 쫓으며 다리를 주무르는 어머니 때문에 포기했다뒤척이던 밤이 지나자 희한하게 통증이 약해지고 부기가 가라앉았다그래도 딛기엔 무리였다잠까지 설쳤는데 어머니는 신 새벽에 이슬을 헤치고 애기똥풀을 또 캐왔나 보다아침밥을 짓는 틈틈이 새로 만든 떡을 붙였다함부로 다녔다가는 도진다며 등굣길의 나를 둘러업었다..

학교는 두 고개를 넘어야 하는 먼 거리였다행여 넘어져 엎친 데 덮칠세라 어머니는 비탈길을 조심조심 오르내렸다어깨까지 들먹거리는 숨찬 소리에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차라리 팔을 다쳤더라면 좋았을 성싶었다.. 덩달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니 소재지 속에 묻힌 학교가 엄지손톱만 했다평소엔 단걸음에 내달렸을 길이나 어머니의 등에서 내려다본 학교는 한없이 아득해 보였다쉬는 시간이나 체육시간에도 교실만 지키려니 하루가 이만저만 따분하지 않았다.

태양의 열기가 순해질 무렵 허름한 치맛자락을 날리며 운동장을 바삐 걷는 사람이 보였다무심코 가까워지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좀처럼 학교에 오지 않던 어머니가 아닌가온종일 잡히지 않았을 일손이 훤했다이튿날도 강행군은 계속되었다.

길 가다 애기똥풀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애틋해진다그것이 어떤 연유로 내 발을 낫게 했는지는 모르겠다다만 어머니는 번뜩이는 지혜로 애기똥풀에다 사랑과 정성을 빚어 오가는 고갯길에 빌었으리라그때 어머니 나이보다 훌쩍 앞선 내가 지난한 시간을 돌아와서야 지극했던 마음이 되살아난다귀밑머리가 아무리 세어도 자식은 죽는 날까지 부모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가 보다무심한 세월 속에 노쇠해진 어머니를 생각하니 싸한 전율이 인다.

내게 어머니가 그런 존재이듯 이제는 나도 세 아이 어미가 아닌가각박한 세상에 정신적인 위안이 되고 갈증 나는 목을 적셔줘야 하는 샘물의 중심에 있다그 자리가 외롭다는 걸 느끼는 순간 노모의 초상肖像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발은 여전히 쑤신다어머니가 실살을 제대로 안다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풀섶을 뒤질지도 모른다오늘도 날이 밝으면 팔순의 노모는 전화를 하실 게다.

"야야발은 좀 어떠냐?"

 

  #애기똥풀#이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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