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풀꽃 / 전 민

 

 

거실이 환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일 있을까 싶었는데 화르르 꽃이 터진 것이다. 잗다란 연분홍 꽃잎이 더없이 앙증스럽다. 생긴 모양으로만 보면 풍로초나 앵초꽃을 닮았다. 갓 피어난 쌀알만 한 다섯 장의 꽃잎이 먼먼 은하의 세계에서 온 듯 애잔하다. 콧김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데 미미한 향기까지 서렸다.

한겨울에 풀꽃이라니.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갑다. 흙을 움켜쥐고 사는 것들은 배반을 모른다. 기쁨만 준다. 그런데 가만, 풀꽃 언저리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막 들리는 것 같다. 치, 번듯하지 않다고 외면하더니. 봐라! 나도 꽃 피울 수 있어. 구박할 때는 언제고 참말 염치도 좋다야. 세상 어디에도 의미 없는 존재는 없거늘. 제 발이 저린 나는 뜨끔했다.

지난가을 산길을 가는데 풀 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숲길 조성공사를 하느라 파헤친 흙더미에 쓸려 뿌리를 허공에 둔 채 말라가는 야생초가 눈에 들어온 거다. 잎이 긴 타원형으로 마주 달린 게 어여쁘기도 하고 짙푸른 이파리가 아까워 손수건에 싸서 가져왔다. 맞춤한 화분에 심고 물을 적셔주었더니 오래잖아 생기를 되찾았다. 기분이 뭉게뭉게 했다. 이름이 뭘까 해서 네이버 선생에게 물었다. ‘끈끈이대나물’이라고 했다. 토종이 아닌 유럽에서 건너온 식물이라고. 강가나 산기슭에 자라며 한해 혹은 두해살이를 한다고 친절히 가르쳐줬다. 그렇구나. 멀리서 이주해온 아이구나. 가으내 그 애와 나는 말동무를 하며 지냈다.

찬 바람 불고 겨울이 왔다. 기온이 점점 낮아지나 했더니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이 오소소 몸을 움츠렸다. 얼마 뒤 한파가 몰려왔다. 차일피일하다 월동 채비를 놓친 나는 춘향이 월매 이도령 같은 주인공급 인물은 안으로 들여놓고 향단이 방자 같은 놈들은 그대로 내버려 뒀다. 그리 많지는 않으나 화분을 죄다 들이기에는 실내가 비좁았다. 작년에도 그 전 해도 겨울나기는 얼추 그리하던 터였다. 어쨌거나 돌팔이 원예사의 어설픈 판단 때문인지 봄이 되면 빈 화분이 늘어나고는 했다.

열정과 냉정 사이. 한순간 마음이 동해 애써 집으로 데려오고는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지면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이 어디 한둘인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울 안에 들일 것과 울 밖에 둘 것을 눈으로 점찍다가 잠시 그 애 얼굴과 마주쳤으나 어차피 풀인데 뭘 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며칠이 흘렀을까. 베란다로 빨래를 널러 나갔다가 푸르딩딩 동상에 걸려있는 그 애를 봤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 어쩌자고 저 연약한 것을 모른 척했나. 영하 16도를 웃도는 바깥 날씨에 유리창 하나가 바람막이가 되었으면 얼마나 되었으랴. 냉해를 입은 이파리를 보는 순간 가슴 한편이 아릿했다. 따가운 볕에 시들어가는 게 안되어서 품어오고는 날씨가 춥다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귀찮다고, 나 몰라라 한 것이 미안했다. 하필 왜 그때 양부모의 학대로 어이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어린 ‘정인’이의 얼굴이 겹쳐졌는지 모른다. 게다가 농가 비닐하우스의 열악한 환경에서 혹한을 견디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어느 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뒤따랐다.

냉큼 나는 화분을 들고 들어왔다.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시키고 받침대를 받쳐 다시 식구로 앉혔다. 아침이면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데려가고, 어스름이면 다시 제자리로 옮기길 되풀이했다. 몇 날 며칠 추운 데 방치한 게 걸려 약한 줄기에 나무젓가락을 세워 묶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보이려는 듯 끈끈이대나물은 아픈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는 목을 쭉 늘여 꽃대를 세 개씩이나 뽑아 올렸다. 이윽고 팡팡 꽃 축포를 터뜨렸다.

오직 나를 위해 핀 꽃. 무리 지어 있으면 더 아름답겠지만 홀로 있어도 고요히 예쁘고 사랑스런 꽃. 투명한 고갱이를 활짝 열어젖힌 속내가 궁금해 눈빛으로 묻는다. 너는 삶의 요소를 뭣이라 말할래?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꽃이 메아리를 보내온다. 아무리 빈약한 몸이라도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언제든 찾아오는 법이야. 너도 단전에 힘을 실어 뚝기를 키워봐. 기죽지 말고 살아봐.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피는 거라고 말한 시인도 있잖아. 꼭 토양이 좋아야만 꽃이 피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고 보니 엄동설한 때아닌 풀꽃이 내게 온 것은 언제나 임계점 앞에서 주저앉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포기하지 않는 굳건한 생명의 힘을 오롯이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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