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자의 추행 / 오차숙

 

악마의 화신은 어떤 존재일까.

H라는 땡추스님은 만 가지 추행을 행하고도 순수라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자신이 스치는 것은 먼지까지도 이상이며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인연 맺은 여인들을 수첩에 적고 다니며 자기 위안을 찾곤 한다. 사랑이란 ‘생’을 음미하고 싶은 사람의 것이나, 땡추로 불리는 허무주의자 H스님의 아가씨 사냥은 가슴이 서늘하다.

H는 스님이라는 고상함으로 인격을 두르고 108명의 여자와 인연을 맺는다. 사진에서 보았지만 무책임한 스님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는다. 스님은 근엄한 자세로 합장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님은 땡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허무가 배인 그 모습이 여성들의 눈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직관과 논리가 예민해 보였고 특이해 보이는 자아 때문에 아가씨들이 피를 흘린 것 같다.

H스님은 율법에 앞서, 운명적인 인연법에 따라 미인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자체가 인생의 윤회설이라고 주장했다. 교외별전─인생사 깊은 뜻은 교과서에 없다며 한국 불교에 정면으로 도전한 스님이다. 연애선, 자살선, 허무선을 앞세우며 자기를 합리화시키기에 정신이 없었다. 중년까지 속세를 멀리 한 스님이 산이나 바다에서는 순수를 찾을 수 없었다며 허무의 키Key를 여자에게로 돌렸다. 자신이 추구하는 순수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 22세 미만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괴짜는 샘물이다/ 세속의 맑은 공기다/ 유아독존의 망토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순수한/ 어둠이다// 괴짜는 순수를 갈구한다/ 목을 축이려고 들판을 헤매며/ 꽃송이를 꺾는다// 이곳저곳/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색채를 잃어간다/ 날개와 더듬이가 부서지고 하얀 피를/ 흘린다// 악마가 찾는 순수의 빛깔은/ 어떤 색상일까./ 자신의 분방함에 미물이 죽어가는 것을/ 깨닫진 못했을까.// 하지만/ 스님의 예술성은 진리의 광채가/ 난다/ 장대비 속의 찬란한 번개처럼…….

  H는 세인의 지탄을 받아 산사에서 쫓겨나고 말았지만 이 시대의 악마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고행을 자초하며 자유를 구가했던 그 스님은 세기말의 희귀한 예술초가 아닐까. 종말이 온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H스님의 넉넉함은 예술을 빙자한 교만은 아닐까.

사랑의 실체는 분방함이 넘치게 되면 냄새가 진동한다. 어려운 입장에서도 경건으로써 다스려질 수 있는 경지, 백지의 모습에 아련한 점으로 남아 있을 때 그 실체는 가치가 있다. 죽는 순간까지 아른거리게 하며 서로의 영혼을 위로한다. 지순함 속에서 곱게 피어올라 들꽃의 향기로 피어난다.

H스님은 사색과 순수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빛 속에 가려진 무색의 ‘순수’를 찾지 않고 번쩍이는 ‘순수’에게 사기 당했으니 허무가 그 영혼을 에워쌌으리라. 어린 나이에 입산해 환속과 출가를 반복하며 불세출의 땡추로 불리는 52세의 허무주의자─그가 쓴 자서전에서 깊은 회한에 잠기지만, B라는 아가씨와의 사랑 고행은 저승에서나 만회될까. 한 여자에게 머물지 못해 붉은 원귀처럼 헤매던 그 처절함, 백팔번뇌 덩어리를 여자에게서 풀어보려고 했던 그 몸부림을 우리는 어떻게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H스님은 B라는 아가씨와의 긴 편지를 묶어 서간문을 낸다. 그 서간문이 오열을 하며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위로가 될까. 아가씨는 세상과 하직하기 전, 도피처를 찾아 미국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국제전화로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스님에게 전화를 한다. ‘사랑하고 있다’는 스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그녀의 길을 가려했던 것이다. 잔인하게도 스님은 그 대답을 회피하고 말았다. H의 오만함과 대책 없는 광대의 모습은 그녀를 절망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무책임한 그 모습은 나의 정신까지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그녀는 웨딩드레스 속에 감춰두었던 권총을 꺼내어 자살해 버린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므로 타국으로 도피했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또렷한 실체, 그녀는 그 소중한 실체를 가슴에 담고 싶어 했으나, 그 끝은 죽음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스님은 사찰에서 은둔하며 심하게 자학한다. 만회할 수 없는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숨막혀 헉헉 운다. 그 모습이 순수를 사냥한 스님의 철학이고 예술이었을까. 허무의 갑옷을 두르고 번민하던 방랑자의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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