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의 추억 이병식

 

 

 

초등학교 앞이다아이들이 삼삼오오 교문으로 들어간다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눈여겨본다하나같이 가방을 등산 배낭이라도 멘 듯 등 뒤로 메고 다닌다아이들의 가방은 개성이라도 나타내려는 듯 저마다 색다르다저학년 아이들의 가방은 가벼운 색깔로 앙증맞게 예쁘다고학년의 책가방은 좀 어두운 색깔이지만 듬직해 보인다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들고 다녔던 책가방이 생각난다.

나는 시골에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도시 학교로 전학했다도시 학교로 전학은 했지만촌티를 벗지 못한 상태로 학교에 다녔다도시 학생들은 대개가 손으로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가지고 다녔다그런데 나는 그런 책가방이 없었다시골아이처럼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녔다시골 학교에서는 거의 다 책보를 들고 다녔다저학년 남자아이들은 책보에 책을 싸서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고 여자아이들은 허리춤에 매고 다녔다그럼 깡충깡충 뛰어다니기도 좋고 편했다그러나 고학년 형들이나 누나들은 책이 많아 책보를 메지 못하고 보따리처럼 들고 다녔다.

엄마는 도시 학교에 전학 시켜 놓고도 꼭 필요한 책가방을 사주지 않았다엄마는 돈이 없다며 언제 사주겠노라고 말하지도 않았다나 혼자만이 책보를 들고 학교 다니는 게 하루하루가 고욕이었다책보를 들고 학교 가는 게 창피해서 어깨에 메지 않고 일반 보따리 들고 엄마 심부름 가는 것처럼 위장하여 다니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아버지는 병명도 모르는 몹쓸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는데 밖에 나가 일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는 않았다그래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소일하고 있었다차로 물건을 싣고 와서 공급해주는 장사꾼도 있었고또 직접 시장으로 가서 팔 물건을 사 오기도 했다언젠가 엄마가 작은누나에게 배다리 시장에 가서 팔 물건을 사 오라고 시켰다작은누나는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시장 구경을 할 수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배다리 시장은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 배가 그곳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배다리 시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천을 대표할만한 큰 시장이었다진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작은누나는 필요한 물건을 사지 못했다그 물건이 없었다기보다 엄마가 준 돈이 모자랐지 싶다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어떠한 물건도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장인데 그까짓 과자나 사탕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오는 길에 누나는 나를 데리고 책가방 가게로 들어갔다내 책가방을 사준다고 했다비현실 같은 현실에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그 시절에 만약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책가방을 갖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정말 책보 들고 학교 간다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작은누나도 나의 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누나가 보기에도 다른 아이들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동생만 책보를 들고 다니는 게 보기 싫었나 보다.

책가방을 사준다니 세상을 다 얻는 기쁨이었다그런데 한편 똑같은 걱정이 반대로 생겼다집에 가서 엄마한테 혼날 일 때문이었다분명 엄마한테서 책가방을 사라는 이야기는 없었다그렇다고 나 모르게 작은누나와 엄마 간에 어떤 밀약이 있었을 가능성 또한 전혀 없었다당시 집안 사정이 내 책가방을 사줄 만큼 좋아진 징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렇다고 나보다 네 살 많은 누나가 내 가방을 사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그나마 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나이밖에 되지 않았었으니까엄마한테서 나올 꾸지람은 누나가 받겠지만나로 인한 일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허락받지 않은 일을 저지르고 어찌 감당할까 걱정도 되었다.

하여간 가장 저렴한 가방을 하나 샀다싸구려면 어떠하랴나에게는 가격이나 가방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그 촌스러운 책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 온통 가슴에 들어찼다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기쁨과 설렘두려움과 걱정이 혼재하여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시장과 집까지의 거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그런데 어느새 저 앞에 우리 집이 보였다나는 다시 가슴이 콩닥거렸다볼 것도 설명할 것도 없다사 오라는 물건은 손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덩그러니 들려진 책가방만이 엄마의 시선에 잡힌 것이다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빨리 가서 바꾸어오라고 야단이었다그러나 나도 누나도 이미 혼날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묵묵히 욕을 견디고 있었다그 정도의 욕에 가방을 물리러 갈 거면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나는 엄마가 화에 못 이겨 가방을 찢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엄마의 화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 시절 사는 게 많이 힘들기는 했다돌이켜보면 한국전쟁이 끝난 지 삼사 년밖에 되지 않았다우리는 맨몸으로 피난 내려와서 제자리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였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책가방이 꼭 필요한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고통이었다.

나는 작은누나가 무슨 배짱으로 감당할 수도 없는 돌출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래도 나에게 책가방이 생긴 것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내일부터 책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가난했던 그 시절의 슬픈 기억을 지금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니 행복이 아니랴귀여운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가방을 메고 학교 들어가는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다공부 열심히 하라고 마음으로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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