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픔의 정체 서숙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50%가 국내 총자산의 2%를 소유한다고 한다(상위 10%가 54% 차지). 이것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우인가그렇지는 않다어느 나라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빈익빈 부익부소득 불균형부의 편중 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가 보다.

이러한 문제점을 다소라도 완화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안이 요즘 오히려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맞물려 있고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신통치 않기 때문인 것 같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88만 원 세대를 걱정하지 않았던가.

이에 더하여 근무시간 단축을 위한 주 52시간의 근무제 실행을 앞두고는 "저녁 있는 삶저녁밥이 없어진다!" 이런 자극적인 구호까지 나온다워라밸 같은 것은 한가한 소리고 아예 직장이 날아갈 판이라고 걱정한다반면에 한편에서는 "노동자가 1시간 노동에 만 원 받는 것주 52시간 이내 노동하는 것은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상식이다디테일 부족을 문제 삼아 공격하면 안 된다."라는 주장도 있다.

"2019년 최저임금 8350×8시간×20=1,333,000." 이 단순한 수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우리나라의 많은 극빈층과 차상위계층이 저 숫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저 액수는 올해 최저생계비 1인 가구 1,003,263원과 2인 가구 1,708,258원에 걸쳐 있다최저임금과 상관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몇십 년을 반복적인 단순노동만 하는 사람들이다번 돈을 다 써버리는 구조라서 재화를 쌓을 여력이 없으니 앞날에 대한 청사진은 없다대한민국은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앞두고 있다고 하고 세계 7위의 수출대국이라는데 저 숫자들은 안녕한가.

헤겔은 변증법에 따라 '역사는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에 차서 주장했다과연 20세기에 접어들어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여성과 유색인 등 소수자의 인권이 급속도로 신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자산과 소득 격차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분의 차이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출신 성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산에 따른 계급사회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미국은 그레이드대로 사는 나라로 이미 알려져 있거니와 우리나라도 계층 간 이동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데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회보장과 복지제도 덕분에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그리 크지 않다그래서 자신의 소득 수준에 안주할 수 있다반면에 우리는 사회안전망의 미비로 자녀교육과 노후보장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그리하여 자영업자 25%의 포화상태가 만들어졌다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이들이 저출산을 걱정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근근이 현상유지를 하면서 아무런 비전을 지니거나 미래에 대한 플랜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육아는 힘에 부친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리고 그렇게 힘들여 키운 자식의 미래도 보나마나 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자식을 낳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당장 누추하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던 한 세대 전과는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다.

1962년이 존 러스킨이 출간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에서 그는 마태복음에서의 포토밭의 비유를 통해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펼쳤다포도밭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이건 오후 늦게야 참여한 일꾼이건 같은 품삯을 주었다당연히 먼저 와서 작업한 사람들의 불평이 있었다주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중에 온 이에게도 똑같이 1데나리우스를 주는 것이것이 내 뜻이니라." 사회의 끄트머리에 있어서 기회를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보수가 지불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 책에 간디가 감명을 받았다그가 일개 변호사에서 세상의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로 바뀌는 데에는 러스킨의 책도 일조를 한 셈이다모든 일군들에게 준 1데나리우스는 바로 기본소득 개념에 가깝다기본소득은 노동의 총량과 그 질에 관계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저의 생존 비용이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경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인의 집에 가려고 무궁화호 열차를 탄 적이 있다강원도 어느 간이역이 몹시 한산했다너무나 깨끗한 쓰레기통에 휴지 등속을 버리려니 왠지 미안했다나를 마중 나온 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건 좋은 일이에요청소미화원에게 일거리를 주어야 해요."

내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인간 노회찬이 갑자기 이승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는 개인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다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며 사리사욕이 기쁘지 않았던넓게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량이 없는 사회는 어쩌면 이다지도 야박한지 모르겠다이제는 그의 모습을 유튜브에서만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6411번 버스의 진실이찬진으로 하여금 눈물 콧물을 흘리게 했다는 그 연설 속의 투명인간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오늘날의 나로 존재하도록 해주는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한다거리와 건물을 청소하는 사람들도로와 상하수도와 전기를 관리하는 이들치안을 맡은 사람들그들이 없다면 이 도시는 숨을 쉴 수가 없을 것이고 나의 하루가 궁색할 것이다나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가그러니 나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서 도시의 삶을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는 필요한데 그것은 그러니까 그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나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박경리의 토지를 읽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가 반상의 구별이 그토록 심했었구나 하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았다고 했다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 같은 조선시대의 신분 차별을 연세 높은 박사님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항용 자신의 좁은 우물 속에 갇혀 사태와 진실에 엉뚱할 정도로 어두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소설에서 잘 묘사되어 있듯이 유복한 양반 댁의 종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다가난한 소작농은 일 년 내내 허술한 입성에 쌀밥 한 그릇은 제삿날에야 먹어볼 수 있다그러면서 신분의 우월감으로 종을 업신여긴다주인공인 어린 길상이는 어느 날 곡식 섬이 실린 소달구지를 얻어 타고 가면서 생각한다저 논밭에서 허리 펼 새 없이 일해서 추수한 농부들에게는 정작 이 곡식들이 차례가 안 가고참판 댁과 친분이 있다는 한 양반 댁은 한 일도 없이 마차에 가득 실린 곡식들을 거저 받는다그 연유는 어떻게 된 것일까그대의 길상이의 의문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현실에서나 의식에서나 벗어날 수가 없다그로부터 파생되는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사람들은 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개발독재 때는 민도가 성숙하지 않아서 서구적 민주주의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분배와 복지를 말할 때는 아직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고 했다최저임금을 보장하다고 하니까 그 때문에 알바나 비정규직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어 저소득층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나는 왜 그들의 주장이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으로 들리는지 모르겠다내가 누군가에게 월급을 주는 처지가 아니라서 현실에 어두워서인가아직은 때가 아닌가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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