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 박문자

 

가끔 자기 밖을 빠져나와 자신을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멀리서 보는 자신 삶이 너무나 작아 보이는 때도 그 순간이다. 지금 나는 며칠 동안 머문 공간에서 빠져나와 넓은 창에 내려 쬐이는 조각난 겨울 햇살을 아프게 받으며 마음을 열어 놓고 있다. 무엇이든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와 다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루는 그렇게 햇살만 보았다. 이튿날에는 겨우 일어나 창문 앞에 섰다. 환히 트인 창 밖으로 둑이 보였다. 내 시간 밖 여행은 이름도 아름다운 여수에서 무방비 상태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로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둑 끝쯤에는 억 겁의 세월 속에 갇힌 강 하나가 도도히 흐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실제로는 바다를 낀 해안도시여서 강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창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나에게 그 끝은 강이라는 상상을 하게 했다. 강 주위로 몇 그루 천년 송을 놓아 보기도 하고 포플러와 물푸레나무를 한껏 심어 보기도 했다. 정말 그런 나무가 있을 것 같기만 했다.

그날 밤 어둑한 먹장구름이 깔리면서 소리 없는 눈이 내렸다. 아침이 되자 앙증맞은 하얀 솜털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었다. 들판은 백색의 절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하얀 눈이 잃어버린 기억처럼 아득 했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누구인지 반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그곳을 걸어 본 적이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밖으로 나가 하얀 눈을 한 입 먹어 보고 싶지만 생각만으로도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둑에는 새 몇 마리가 내려와 앉았다가 이내 날아가 버리곤 했다.

오래 묵은 몇 장의 사진 같은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같이 재를 넘어 큰집 할머니 댁에 가면 마디 굵은 손으로 내 손목을 꼭 잡곤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웃음. 할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오남매를 키우신 할머니께 소문난 효자였다는 아버지의 얼굴이 오늘 따라 왜 가슴속으로 저려 올까.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엷은 잠 속으로 빠져들며 듣던 환청 같은 파도 소리. 그리고 사진은 퇴색되었지만 생생히 떠오르는 내 결혼식 광경. 아이의 웃음소리 속에 있는 나. 사업으로 몸은 지쳤지만 더없이 열정적이었던 한 때. 또 병실의 커다란 유리에 비친 몇 달 전의 낯선 내 모습. 인생을 회고해 본 게 이런 짧은 순간순간으로 지나가는가 싶기도 했다.

문득 눈앞에 있던 절경이 둑 밑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참으로 해 놓은 일이 없구나 하는 자책감과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급해지는 무력감만 회상의 꼬리를 물었다. 그것은 허무의 끝이기도 했다.

“저 그 공 좀……”

억만 년을 거슬러 오는 종소리 같은 말이 들렸다. 음성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애를 앞세운 할머니였다. 그렇게 나는 기억 상실증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내 치마에 반쯤 가려 저 있는 공을 보며 아이는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보기 좋게 홍조를 띤 얼굴이 눈이 부셨다.

“저…….그 공 좀 집어 주실래요.”

“그럼요 몰랐어요. 아이가 똑똑하게 생겼습니다.”

아이는 공을 받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제 또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을 찾은 아이들의 함성이 눈 위로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눈발을 튀기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자주 나오는데 나를 처음 본다며 손자 녀석이 눈이 오면 밖으로 나가자고 보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고 부산에서 다니러 왔어요.”

눈은 그쳤지만 나뭇가지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아득한 시간을 기억해 내듯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풀어내고 있었다. 부산이라면 바닷가를 아예 생각하는지 혹시 바닷가에 사는지, 뭔가 끄나풀이라도 잡으려는 듯 물었다.

“예. 집은 바다에서 떨어져 있지만 자주 바다에 가지요.”

“그럼 혹시 김00씨라고 들어 본 적 없으신 가요? 그 사람이 부산 바닷가에 산다고 그랬는데 너무 오래 돼서 잊어 버렸어요.”

나는 하마터면 크게 웃어 버릴 뻔했다. 부산에서, 그리고 바닷가에 산다고 해서 몇 백 명이나 있을 법한 이름을 묻는 그녀의 천진스러움에 기가 막혀 멍하니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깊은 눈이 아이의 눈을 닮았을 만큼 그녀는 진지했다. 어쩌면 상실하지 못한 기억 한 자락을 쫒고 있는 것이리라.

“글쎄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네요,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군데 그렇게 찾고 싶어 하세요.”

그는 고향 사람으로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누가 그러데요. 부산 바닷가에 살고 있다고요. 그 사람은 이제 자신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디 사는지 알기만 하면 멀리서 한번 보기만 해도 좋겠다고 했다. 목소리는 눈 녹은 물기로 젖어 있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하얀 눈이 더 투영되어 왔다.

그래, 때로는 사랑이 무턱대고 궁금하고 그리워질 때가 있다. 시간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남은 시간이 무심하리만큼 조급하게 흐를 때 더욱 그럴 것 같다.

“얼마 전 그 사람과 닮은 사람을 이곳에서 보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하루 종일 뜨거운 바위 덩어리 하나를 가슴에 놓은 거 같더라고요.”

그때 아이가 공놀이를 하다가 넘어졌는지 자지러지게 울면서 할머니를 엄마처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눈을 총총히 밟으며 아이에게로 뛰어 가더니 여윈 등에 아이를 업고 나에게 눈인사를 보내며 눈 속으로 시나브로 사라졌다. 그녀의 볼이 아이의 볼과 닮아 있었다.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눈 오는 날은 오히려 포근하다고 한다. 이런 날에는 눈을 맞으며 마냥 서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눈 속에 선 나무가 그럴까. 어쩌면 그 나무도 이런 날에는 초연(超然)의 외로움을 탈 것 같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웃음을 터트릴 수 없고, 아무나에게 순백의 외로움을 쏟아 낼 수는 더더욱 없다.

기억 상실의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것을 그렇게 버리고 또 버렸다. 며칠 후면 그녀의 말처럼 나는 부산 바닷가에 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그녀가 그리던 사람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물어 보리라 .김00씨 아니냐고. 그도 나를 보며 삐죽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 낼까. 나는 눈을 맞으며 긴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 처음 빛을 보는 사람처럼 눈길을 찾아 걸었다.

거긴 정말로 겨울나무가 눈부시게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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