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름다운 저지레 구활

 

 

 

가을 붓질 채색잔치에 올가을을 몽땅 헌납했다우리나라 단풍은 백두에서 출발하여 금강설악치악을 거쳐 태백과 지리산을 지나 땅끝 두륜산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 마침표를 찍는다나무들이 발광(發光)하는 저들의 축제에 왜 몸이 달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구령에 맞춰 노란 치마로 갈아입는 은행나무를 생강나무와 고로쇠물푸레나무가 힐끗 쳐다보더니 저들도 바쁜 손놀림으로 노란 옷으로 갈아입느라 부산을 떤다당단풍과 화살나무그리고 옻나무가 붉은 스웨터를 걸치고 패션쇼 맨 앞줄에 서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깜짝 놀란 갈참졸참떡갈서어나무가 노을빛 주황색 깃발을 들고 빨강과 노랑 사이에 끼어들며 색깔의 고참 순서를 따진다. “우리는 빨주노초의 자 항렬이야. ‘노’자가 까불고 있어.” 단풍에도 표정이 있다. ‘단풍이 꽃이라면 가을은 두 번째 봄이란 알베르 카뮈의 단풍 예찬에 박수를 보낸다.

단풍철에 가장 철없이 구는 것들이 있다늘 푸른 소나무와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 같은 사철나무들은 체면 없이 우둔하다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서커스 크라운의 복장을 하고 꽹과리를 치면서 놀이판으로 뛰어나온다그러자 사철나무들은 엉겁결에 단풍색을 찍어 바른다는 것이 물감 선택을 잘못하여 더 푸른 색칠을 하고 가을 잔치에 왔나 보다.

나무들이 부끄러워 할까 봐 하늘도 잉크를 떨어뜨린 푸른 물 한 바가지를 덮어쓰고 철딱서니 없는 그룹에 끼어든다하늘과 한 통속인 바다도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채 상모를 돌리며 파도치듯 다가오면 가을은 한껏 무르익는다부안의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길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모든 잎이란 잎들이 유독 추위에 약한 녹색을 구역질하듯 토해내고 있는 이 시기에 전나무 숲은 오히려 푸름을 담금질하고 있으니 세상일은 한 가지 공식으론 풀 수가 없다.

올 단풍맞이 행사는 서해로 정했다해마다 단풍철이 오면 포항에서 묵호를 거쳐 강릉과 설악 일원을 헤매고 다녔다맛난 음식도 자주 먹으면 물리듯 올해는 목포에서 하의도를 거쳐 곰소 격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그러나 서해 단풍은 기대했던 것만큼 욕심을 충족시켜 주지는 않았다역시 산은 높고 깊어야 단풍도 색깔이 짙고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목포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은 시절이 일러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고 부안의 내소사에 들어서서야 단풍 같은 단풍을 만날 수 있었다흔히들 가을을 조락의 계절이라 말한다그러나 내소사의 단풍 숲에 갇힌 듯한 전나무들은 가을 햇볕을 받아 더욱 정정하다가을은 성능이 다 된 배터리처럼 무화(無化)쪽으로 치닫는 허무의 시간만은 아닌 것 같다.

하기야 가을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환경미화원의 빗자루 끝에 실려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걸 보면 까닭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거기에다 썩어 흙이 되기 전 잠시 쉴 곳을 찾아 길 떠나려는 잎새들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의 목소리가 데리고 가버리면 마음은 허허롭기 짝이 없고 어느새 두 눈엔 눈물이 괸다.

가을바람 또한 바둑판의 훈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그래서 바람은 오지랖이 넓다가을바람은 여름 바다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 영혼을 컬컬하게 달구어 놓는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나를 채우소서란 가을 시를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린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라는 시창(詩唱)소리가 들리면 겨울 속에 앉아 다시 봄을 기다리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그래서 가을은 바람맞이 언덕에 선 스란치마를 입은 여인과 같다.

바람은 소리가 아니라 사실은 적막이다부딪히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보이지도 않는다나뭇잎도 공기 속에 물너울 같은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져 바람에 쓸려갈 때 비로소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가을바람 속엔 어제의 추억이 묻어 있다가을에는 잊어버린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까지 제자리로 돌아와 현관문을 연다가을은 잘난 것못난 것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른다돌이켜 보기도 싫은 추한 과거까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승화시켜 준다바로 가을이 저지르는 아름다운 저지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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