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베 / 배재록 -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

 

 

 

슴베는 칼이나 호미, 낫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혀 있는 뾰족한 쇠붙이를 말한다. 땅속에 묻힌 나무뿌리처럼 자루 속에 숨어서 농기구를 지탱해 날이 잘 들게 해준다.

쇠붙이와 자루인 나무는 오행의 운행에서 금극목(金克木)으로 상극(相克)이라 한다. 낫은 나무를 쳐내고, 나무는 쇠붙이를 녹일 수 있어 상극이라는 것. 그런 상극관계인 쇠꼬챙이와 자루가 상생하여 온전한 낫이 되도록 해주는 역할이 슴베다.

조선낫 슴베도 물푸레나무로 된 자루 안에 숨어 있다. 나는 산소에 벌초를 할 때는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사용했던 조선낫을 쓴다. 그 슴베 덕분에 조선낫은 굵은 나뭇가지도 거침없이 쳐낼 수 있다. 슴베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야 제 기능을 한다. 그래서 시뻘겋게 달군 각진 쇠꼬챙이를 망치로 자루에 박는다. 연기를 내뿜으며 쏙 들어가 숨어버린 슴베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낫을 지탱하고 능력을 극대화 시켜준다.

조선낫에는 나의 영원한 슴베인 아버지 손때가 남아있다. 이는 아버지가 힘겹게 육남매를 키우느라 혼신을 다하고 남기신 삶의 흔적이지 싶다. 빈농의 애옥한 가난과 싸우며 가족의 슴베로 사시다 타계한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고 고독했을까.

20여년 넘게 조헌병을 앓았던 작은딸의 슴베가 된 아버지는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셨다. 뇌막염으로 쓰러진 나를 살리려고 가산을 탕진하며 3개월 병원생활을 함께한 아버지의 슴베는 신이셨다. 사력을 다한 슴베에도 불구하고 역병으로 두 명의 자식을 저승으로 보내면서 오열하던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슴베는 넓고 굽은 등에 있었다. 너무 늦은 것인가. 조선낫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그 슴베와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수많은 슴베 중에 생각이 다른 사람관계 만큼 힘든 것도 드물지 싶다. 우리 부부관계 사이에도 상극을 다스려서 상생하도록 해주는 슴베가 존재한다. 그 슴베는 엇박자가 나더라도 서로가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금실관계를 이루게 조력해 준다.

불같은 성질을 가진 나와, 나무 같은 아내가 원만하게 살아온 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갈등은 보듬어주는 슴베 덕분이지 싶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교편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자청해 내조와 육아에 전력한 아내의 충직한 슴베는 큰 보배다. 또한 내가 회사생활 할 때 일취월장 한 것은 헌신적인 아내의 슴베 덕분이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업기획과 영업마케팅 업무를 오래했다. 경영층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시장보고서와 기획물을 제공해주는 쉽지 않은 슴베 역할을 했다. 회사 정문에 간을 맡겨놓고 출근해 회사의 슴베로 근무했다.

관리자가 된 뒤로는 회사와 직원들의 칼날을 조율하는 슴베로 근무를 했다. 특히 민주화된 회사 조직에서의 슴베는 권력이 아닌 유연한 신뢰였다. 회사라는 자루와 직원인 날 사이에 슴베가 되어 밀고 당겨 공존으로 이끌어 내기까지는 힘겨웠다. 고난도의 기획업무로 고초가 많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슴베는 외롭고 고독했다.

그렇지만 옛날 조선낫을 만든 장인 장인정신을 응용해 슴베 역할에 충실했다. 대우 받기를 원한다면 자기 일처럼 하도록 유도했다. 부품처럼 취급당하고 인격 없는 조직으로 취급 받지 않게 슴베 같은 애정으로 리더십을 구사했다.

인사권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강제성을 띨 때도 있었지만 칼날이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도와주데 슴베의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직원들은 스스로가 슴베가 되어 자발적으로 일하고 창의, 열정, 협력을 아끼지 않고 회사 발전의 슴베가 되었다. 나 또한 그들과 공생하고 역 슴베를 받으며 나름대로는 성장욕구를 충족시켰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처음에는 아버지로서의 슴베 역할이 힘들었다. 젖빛 교감을 나눈 부모자식 사이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일로 미약한 내 슴베가 제 기능을 못한 탓도 컸다. 궁여지책으로 두 아들 학령기에 가족신문 ‘완두콩과 홍삼원’ 을 만들면서 슴베 역할을 창출하며 실천했다. 전국 가족신문 만들기 대회에 출품해 대상을 탈 만큼 두 아들에게 자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컸다. 신문을 함께 만들며 관심과 좌표를 제시하는 슴베로 두 아들의 성장기를 지원했다.

결국 가족신문 자체가 슴베가 되어 두 아들이 올곧은 길로 걷게 동기부여를 했다. 날선 칼날도 무뎌지게 않았고 일탈도 없이 면학에 전념하도록 해주는 슴베가 되었다.

세상에는 낫 같은 사람도 많지만 슴베처럼 은둔해 봉사하는 헌신적인 사람도 많다. 코로나19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슴베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슴베가 된 그들은 목숨을 걸고 감염 위험을 감내했을 것이다. 칼날인 환자들을 치료하고 생명을 지켜주며 안정을 찾도록 했지만 살신성인 정신으로 어렵게 버텨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세상을 묵묵히 이끄는 것은 슴베 같은 사람들이다.

인생 이모작을 하면서 어렵사리 나를 위한 슴베를 만들었다. 군자불기와 대기만성의 군자다운 기질이 다분한 슴베다. 날이 시퍼런 세상의 낫과 나 라는 손잡이를 이어주는 슴베의 조력을 받으며 평온한 여생을 살아갈 참이다. 날과 손잡이가 엇길 나지 않게 슴베는 인생의 틈바구니에 갈등이 끼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줄 것이다. 내 슴베는 외롭게 고군분투하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곰처럼 재주 부리지 않고, 등을 보이며 배신하는 일도 없다. 구석진 곳에서 묵묵히 삶이 순기능을 하게 조력해 줄 뿐이다.

내 슴베는 인품과 같아 드러내지 않고 돋보이게 하려 애를 쓴다. 돋보임은 재능이나 학식을 감춘 도회와 같지 싶다. 세상에 그 슴베를 베풀며 여생을 살아갈 참이다. 세상의 슴베가 되어 보람찬 삶을 살아갈 나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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