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안도현

 

 

 

일본에서 현재 활동 중인 시인의 시집은 서점에서 거의 진열하지 않는다시집이 꽂혀 있어야 할 서가에 하이쿠 시집들만 빼곡하다그만큼 대중들이 하이쿠를 즐겨 읽는다하이쿠의 역사는 1000년 가까이 되는데일본에는 1000개에 가까운 동호인 모임이 있다고 한다하나의 표현 양식이 오랜 세월 동안 작법이 변하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는 건 예술사에서 드문 일.

하이쿠는 5-7-5의 모두 17자 소리로 된 매우 짧은 시가다그렇다고 글자 수만 맞춘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다하이쿠는 형식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기본 작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계절의 감각을 나타내는 말을 꼭 넣어야 하고첫째 구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하며반드시 끊어 읽는 맛이 나게 한다는 것 등이다짧은 형식 안에 자연과 세상에 대해 촌철살인의 번뜩이는 지혜를 담으려면 이러한 약속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래된 연못이여개구리 뛰어든 물소리”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인데,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이 매미 허물은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된 바 있다내게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를 대라면 간노 다다토모의 이 작품을 든다. “이 숯도 한때는 흰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재가 되기 직전의 숯을 앞에 놓고 나무의 푸른 생을 상상한다는 것이 탁월한 상상력 앞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도 한 수 읽자. “이 가을 저녁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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