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받침 변천사 / 안도현

 

 

 

밥그릇에다 국을 담을 수도 있고 국그릇에다 밥을 담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냄비받침에는 냄비만 올릴 수 있다. 사과를 깎아 올려놓을 수도 없고 과자를 담을 수도 없다. 그것이 냄비받침의 비애다. 주방용품 중에 제일 비천한 역할을 맡은 게 냄비받침이다. 평소에는 싱크대 구석에 웅크리거나 틈에 끼여 있다가 뜨거운 임자를 만날 때만 호출된다. 그것도 열을 받을 대로 받은 냄비만 말이다. 불기에 덴 자국은 그래서 필수다. 검은 상처를 문신처럼 몸에 새기고 산다. 어떤 냄비받침은 생김새가 험상궂기 그지없다. 조폭인가 싶은데 알고 보면 냄비의 똘마니다. 냄비받침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든 견디는 게 그의 삶이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콜라병 뚜껑을 철사로 꿰어 만든 냄비받침이 있었다. 강아지 목걸이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지름이 15센티미터쯤 되었다. 이거 하나를 만들려면 적어도 100개가 넘는 병뚜껑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병뚜껑을 보는 족족 모아오라고 하였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빳빳한 종이를 딱지처럼 접어 냄비받침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재떨이 받침도 만들었고 방석도 만들었다. 요즘은 다양한 재질과 디자인의 냄비받침이 등장하고 있다. 그에게도 패션 바람이 불었는가 싶다.

시인들 사이에는 시집이 냄비받침으로 적격이라는 말이 떠돈다. 시집을 사지 않고 시를 읽지 않는 세태를 보면서 내뱉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다.

시를 읽지 않더라도, 냄비받침으로 쓰더라도 시집 좀 사주는 세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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