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서 심판까지   -   박세경


   여고 동창들과 미국의 서부 사막을 버스로 달려 라스베가스를 찾아가는 길이다. 라스베가스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이제껏 없던 검문을 한단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흠이 없는 사람만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는데 대형화면을 통해 통과 방법을 알려준다. 켜진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나와 있는 아이콘들을 눌러 정해진 점수 이상이 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아이콘들은 만국공통어인 그림으로 봉사, 자선, 근면, 양보, 준법 등과 같이 일상의 도덕률에 관련된 것들이다. 40여 명의 친구들이 줄을 서서 여러 개의 검색대에 차례로 올라가 어떤 친구는 단 한 번에, 어떤 친구는 두서너 번 만에 문이 열려, 이미 건너가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내 차례가 되었다. 자신 있게 봉사를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0이 떴다. 근면을 눌렀다. 또 ‘삑-’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져 이것저것 눌렀지만 모두 ‘삑-’이고 점수는 0만 나왔다가 사라졌다. 컴퓨터 고장인가 싶어 다른 컴퓨터로 옮겨 가 양보를 눌렀다. 또 ‘삑-’
   혼자 남아 쩔쩔매는 내가 딱했던지 버스에서 기다리던 한 친구가 쫓아와 훈수를 해 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그 친구가 통과했던 컴퓨터로 갔지만 별수가 없다. ‘이럴 수가?’ 마음은 급하고 초조할 뿐만 아니라, 창피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그때 친구가
   “얘, 너 혹시 겉으로만 잘하는 척했던 건 아니니?”
   하고 일격을 가했다. 나는 더 버틸 힘을 잃고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너희들 먼저 가. 나는 호텔 이름을 아니까 나중에 찾아갈게.”
   친구는
   “암만해도 그래야 될 것 같다. 내가 남아 같이 있고 싶지만 나는 햇빛 알러지가 있어서 이런 사막에 오래 있으면 안 돼.”
   하고는 돌아섰다.
   “아냐. 이건 아냐.”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문이 활짝 열리는 서슬에 놀라 깼다.
   참으로 황당하고도 후련한 꿈이다. 잠을 깨고도 생생해 주변을 다시 둘러본다. 동창들과는 20여 년 전에 실제로 사막을 달려 라스베가스까지 간 일이 있다. 그렇지만 난데없이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려면 먼저 가방이나 두터운 겉옷, 주머니 세간들을 바구니에 담아 검색대에 넣고, 사람은 좁은 문틀을 지나 다시 방망이 같은 것으로 검색을 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더구나 조금 전 나는, 자신 있게 커서를 움직여 선택한 아이콘들이 모두 내 뜻을 거부하는 검색대에서 끝 모를 절망감까지 맛보지 않았던가.
   문득 사후세계에 생각이 미친다.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심판대에 서는 순간 꿈에서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어떻게 할까. 여행은 중도에서 포기하고 귀가할 수도 있고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후의 심판은 문을 못 열어도, 안 열려도 달리 내가 취할 방도는 없을 것이다. 절대자의 뜻에 따를 뿐….
   내 삶을 돌아보면 친구의 말대로 보이는 쪽과 안 보이는 쪽이 꼭 일치했다는 보장도 확신도 없다. 인내란 이름으로 포장해 드러나지 않았던 미움과 질시, 증오와 원망까지. 전지전능의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실 것 같아 몹시 두렵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1주일간 특별 새벽기도회가 시작되는데 출석을 안 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구주로 삼고 지은 죄를 회개하면 값 없이 구원에 이른다.’ 는 말씀을 묵상해 본다.
   아슴아슴 밝아 오는 새벽빛에 어둠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나간다. 참 다행이다.




박세경 님은 1999년 《한국수필》 등단. 저서: 부부수필집 『대각선1.5m의 사각둥지』, 개인수필집 『모두에게 봄을』, 현대수필가100인선2 『낮은 곳에 눈 맞추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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