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영택

 

 

 

 

코라도 골았으면, 심장이 좋지 않아 몇 달 째 앓아누우신 어머니의 이마를 짚을 때마다 손이 떨려왔다.

하루는 아주머니 한분이 찾아왔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문병 온 것이다.

"이 사람아 이렇게 넋 놓고 누워만 있으면 어쩌누!"

한 동안 눈물을 글썽이던 아주머니는 용한 한의원이 있다며 내게 그곳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기보다 심드렁한 마음뿐이었다. 종합병원에서도 심장이식 말고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는데. 한의원이 무슨 재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을 하던 나는 아주머니가 일러준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보다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한으로 남을 까봐 위안을 얻고자 집을 나선 것이다.

한의원을 찾아가는 길은 싶지가 않았다. 나는 H읍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곳은 읍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신작로를 한참이나 달렸다.

곧장 가도 십여 리나 되는 길을 차를 잘 못 내려, 물어물어 찾다보니 족히 이삼십 리나 되는 길을 걸었다.

한의원 집 앞에 당도하고 보니, 그 집은 마치 사극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기와를 얹은 한옥 집이었다. 마당을 들어서자 대청마루에는 신선이 내려앉은 듯 허연 수염을 한 노인이 정좌자세를 하고 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집을 나설 때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저 의원이 지어 주는 약을 달여 먹이면 금세라도 어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이런 모습을 어머니가 봤더라면, 너무나 기력이 쇠해서 도저히 모셔올 수는 없었지만 그 아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의원 집을 나서자 마음이 급해져 왔다. 나는 약 꾸러미를 들고 신작로를 달렸다. 정거장까지 가려면 다시 십리 길을 내달려야 했다. 바쁜 마음만큼이나 길은 더 멀어보였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뛰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약을 한 첩만 달여 먹여도 낫겠는데, 숨이 차오를수록 자꾸만 방정맞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혀 왔다. 그새를 못 넘기고 끈을 놓아버리지나 않았을까. 온기를 잃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큰길에 도착하자 저만치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지나갔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다음버스를 기다리려면 삽 십 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조급해진 나는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자 등줄기를 타고내리는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얼마나 달렸을까. 등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버스에 오르자 정거장에 봤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싱긋이 웃었다. 뛰어봤자 거기서 거긴데. 괜히 헛고생만 하지 않았느냐는 표정이었다.

시골버스는 느리기만 했다. 경운기가 지나가면 그 뒤를 따르고, 송아지가 지나가도 한두 번 경적만 울릴 뿐, 버스에 탄 사람도 운전기사도 한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집을 향해 걸음을 내달렸다.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가위눌림을 당한 소년처럼.

초인종을 누르려다말고 나는 대문 앞에 서성였다. 문을 밀고 들어가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방정맞은 생각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럴 때 너머에서 아이 울음소리라도 들렸으면, 그것도 아니면 수돗가에서 귀저기를 빠느라 벅벅 아내의 빨래 치덕꺼리는 소리라도 들렸으면 하고 바랐지만 몸서리 쳐지도록 집 안은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사람 소리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쪽문을 들이밀며 발을 들여놓자 조마조마 하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닌가. 태어나 그렇게 무서워지기는 처음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당 한 구석, 장독 위에는 바싹 마른 빨래 대야가 엎어진 채 놓여 있었다. 잠시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늘 신고 다니던 아내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내게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놀란 아내가 누나 집에 가지나 않았을까. 방문 앞에는 뒤집혀진 어머니의 하얀 코고무신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적이 또 다른 정적을 불러오는 걸까.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다가오는 가슴 저림을 깨뜨릴까봐 나는 침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쿵닥쿵닥 뛰던 심장소리마저 어느새 속으로 삭아들었다. 약 꾸러미를 손에 든 채 나는 어머니의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약을 한 첩만 달여 먹여도 분명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같았었는데. 그새를 못 이기고,,,불씨를 빼버린 아궁이처럼, 소리 없이 온기가 빠져나간 방안은 싸늘한 냉기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금세라도 열릴 것 같은 여닫이문이 자꾸만 어머니의 주검을 가린 병풍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