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둥을 들으며 / 유혜자  

 

 

 

친구 K는 작업하다가 쉬고 싶을 때면 용케 알아챈 딸이 밝은 음악을 틀어놓고 쉬라고 권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알면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직장에서도 편리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거문고를 잘 탔다는 공자孔子의 일화도 생각난다. 음악을 좋아한 공자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한 게 아니라. 노래를 잘 불렀고 악기도 열심히 배워 연주했다. 29세 때는 사양자(篩襄子, 노나라에서 음악을 관장하던 관리)에게 가서 거문고를 배웠는데, 어느 수준에 이르자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줘서 제자들도 곧잘 악기를 연주했다. 그중 민자건이란 이는 공자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스승이 고민이 있을 때는 격한 감정을 담아 연주함을 알아챘고, 어떤 때는 스승의 마음이 가라앉아 있음을 연주에서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민자건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스승의 마음을 알아챈 것은 제자의 마음 읽기 수준이 범상치 않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의 거문고 연주 수준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거문고를 배울 때 연습을 거듭하는 연습벌레로 예술가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거문고를 배우면서 열흘이 넘도록 한 곡만 연습했다. 가르쳐주는 사양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해도 공자는 운율을 익힐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 운율을 알고 나서는 음악에 담긴 의미를 알 때까지 연습하고, 또 음악을 만든 사람됨을 알 때까지 연습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몸의 피곤을 풀어주기 위해 어울리는 음악을 선택하여 틀어주지도 못할 것이고, 웬만한 연주자로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가 들어나도록 연주를 하거나 또 연주자의 마음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퇴직한지 오래지만, 사람과의 긴밀한 관계와 현명한 처신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심리학의 즐거움-2 마음을 읽는다>(크리스 라반 지음, 김문성 옮김)란 책 안내를 보고, 읽고 싶었다. 그 책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면접에서 얻은 지식과 일상생활이나 사회적인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과학적인 실험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정리한 자료들을 통해 대인관계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상대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익히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간 내면의 다양한 심리를 파악하고 나면, 겁먹고 있었던 상대도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또 장소와 분위기를 바꾸고, 상대의 이야기에 맞추거나, 상대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 등으로 대인관계에 좀 더 자신감을 갖게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단순히 음악을 즐긴 것이 아니고, 음악을 통해 예를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이 위대하다. '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에서 근간을 세우고 악에서 성정을 완성한다'고 믿었던 공자의 가르침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거문고 연주에 자기 마음을 담는다는 말에 꽂혔었다. 그리고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던 공자의 이야기를 새삼 귀하게 여기면서 거문고 음악이 듣고 싶어지기도 했다.

공자가 켜던 악기와는 다른 우리네 거문고, 고구려 때 진나라 사신이 가져온 칠현금七絃琴을 왕산악王山岳이 그 본 모양은 그대로 하고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든 악기가 우리 거문고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거문고 연주를 들으며, 혹시라도 내게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채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줄 사람이 있을까. 아쉬워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읽어주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아니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하는 욕심을 부리면, 질박하고 우람한 거문고 소리가 어림없다고 나무라는 듯하다. 거문고는 여리게 켜면 은은한 소리가 나고 세개 켜면 장엄한 소리가 난다.

거문고 여러 줄을 한꺼번에 켜는 *슬기둥은 호탕한 소리로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공자도 슬기둥 기법을 쓰지 않았을까. 아니 나의 무기력하고 나태해진 마음에 호탕한 슬기둥으로 활력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 같다.

 

*슬기둥: 거문고에서 대현의 어느 음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주법의 구음이다. ''은 문현文絃, ''는 유현遊絃, ''은 대현大絃을 짚은 음의 구음에 해당한다. 이 주법은 술대로 먼저 문현을 세게 친() 다음 즉시 술대에 힘을 빼며 유현을 넘는 순간() 다시 술대에 힘을 주어 대현의 정해진 음()을 내려 타야 한다. 음역에 관계없이 대현의 음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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