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외출 / 류영택

 

 

 

 

침대 밑에 놓인 까만 비닐봉지를 꺼낸다.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비닐봉지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의 운동화가 들어있다.

사고가 나던 날, 저만치 떨어져 있던 아내의 신발을 보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리 골절상을 당한 쪽 신이라 왠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새 신발을 사줘야지. 재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자꾸만 눈길이 갔다. 힘없이 모로 돌아간 아내의 한 쪽 다리처럼 짝을 잃고 반쯤 뒤집혀진 신발이 못내 서러웠다.

언제 신을 지도 모르고 아내가 신발을 볼 때마다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우울해 하지나 않을까. 운동화를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쪽 구석에 밀쳐두었다.

거동을 못해 영어의 몸이나 다름없는 아내의 마음이 단 하룬들 편했을까.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뼈와 가죽만 남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의 얼굴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걸을 수는 없지만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나다닐 정도는 되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낼 때보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보였다.

나는 아내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담당의사는 주의만 한다면 병원 가까운 곳에는 나가도 된다고 했다.

얼른 병실을 벗어나고 싶은데 마음만 급해올 뿐 내 발이 아닌 남의 발에 신발을 신긴다는 게 쉽지가 않다. 몇 달 동안 신지를 않아 오므려든 건지 좀처럼 발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입을 앙다문 채 신발 앞쪽을 뒤로 떠받치며 뒤축을 요리조리 뒤튼다. 세상에 태어나 남의 발에 신을 신겨주기는 아내가 처음이다.

 

침대에 내려선 아내는 로보캅처럼 엉덩이까지 오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다. 눈에 익숙해졌으니 이제 예사로 보일 만도 한데 여전히 못 볼 걸 본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보호 장구를 맞추기 위해 왔던 사람의 손에는 책받침이 들려져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고 일어나면 얼굴 표정도 형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나와는 무관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책받침에 끼워진 종이에는 사람의 다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 사람은 양복점 주인처럼 줄자로 다리 길이, 장딴지와 허벅지 허리둘레를 꼼꼼히 재어나갔다. 그리고는 귀에 꽂고 있던 연필로 글씨를 적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에 숫자가 적힐 때마다 내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들이 모래시계 속을 흘러내리는 모래알갱이처럼 주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왜 이러지.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지만 자꾸만 방정맞은 생각만 들었다. 지난 날 두발로 걷던 아내의 멀쩡한 다리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며칠 후 아내의 다리에 채워질 보호 장구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미 예견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섬뜩해서 가까이 가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아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정작 사고를 당했던 그 순간보다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내의 발걸음을 부축하며 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발끝에서 엉덩이까지 감싼 아내의 보호 장구가 흉물스러워 만질 수가 없다. 나는 아내의 불편한 다리 쪽보다는 상체를 부축한다. 그런 내 마음을 들킬까봐 일부러 무덤덤하게 행동하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가 않다. 정작 다리를 보호해주는 보호 장구가 아내와 나 사이를 이간질을 시키는 것만 같다.

아내를 휠체어에 앉히고 무릎에 담요를 덮는다. 빈 공간이 없게 손바닥으로 담요를 가볍게 두드린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운지 아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난다.

혹시 빠뜨린 것은 없나. 병실을 나서기 전 주위를 살핀다. 침대도 잘 정돈되어 있고 자질구레한 휴대품과 지갑이 들어있는 아내의 손가방은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이 쪽 저 쪽을 살펴보지만 빠뜨린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가슴 한 구석이 왠지 허전하다. 뭘 안 챙겼지?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 그렇지, 관물대 위에 놓인 보온병이 눈에 들어온다. 보온병에는 아내에게 먹이려고 밤새 고았던 사골 국물이 담겨있다.

낚아채듯 보온병을 들고 급히 침대 통로를 빠져나오려다 그만 발이 엇갈렸다. 바닥에 뭔가 놓여있는 것 같았다. 지극히 반사적인 동작이었지만 중심을 잡기 위해 양팔을 내저으며 앞으로 몇 발자국 내달렸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와다닥' 바닥을 울리는 발자국소리에 놀란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고 있다.

대체 뭐야! 잔뜩 기분이 상해 뒤를 돌아본다. 마음 같아서는 발을 헛디디게 했던 그 무엇을 향해 속이 시원하도록 발길질을 해주고 싶다.

돌아서고 보니 욱하고 치밀어 올랐던 감정만큼이나 허탈한 마음이다. 성질대로 다 못하는 게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통로에는 아내의 운동화 한 짝이 놓여있다. 성한 다리에 신발을 신기고 남은 한 짝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걸 깜박했던 모양이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서려 했지만, 동그라니 놓여 있는 운동화가 내 시선을 붙든 채 놓아주지 않는다.

본래의 하얀색을 잃어버리고 군데군데 누런 때가 내려앉은 한 쪽 신발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생명도 없고 감정도 없으니 무엇을 느끼며 어떤 일에 서운해 할까마는 운동화를 바라보니 아내의 아픈 다리만큼이나 신발도 아픔을 겪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발이 아내의 다리 같고, 아내의 다리가 신발 같아 보인다.

서로 맞닿은 나뭇가지가 연리(蓮理)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눈물이 끓고 끓어 진물이 되고, 진물이 서로 엉겨 붙어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가 딱딱하게 굳어 졌을 때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으면 연리가 된 자리는 도끼로 내리찍어도 찢겨지기만 할뿐 잘 쪼개지지 않는다.

아내의 부러진 다리뼈는 서로를 향해 눈물짓고 있지만, 아직도 완전한 하나가 되지 못했다. 긴긴 시간, 그 그리움이 한 덩어리가 되는 날 아내의 한쪽 신발도 제 짝과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병실 문을 나서다말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정작 챙겨야 할 것은 보온병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듯 동그마니 놓여 있는 운동화 한 짝이 수술 전 모로 돌아가 있던 아내의 다리처럼 삐쳐서 외돌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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