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 / 윤명희  

 

 

 

기분 좋았던 술자리가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조곤조곤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올라간다. 나보다 열 살쯤은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른한 행복감으로 끝나야 할 술자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시간, 남편이 술이 고프다며 데이트를 청했다. 데이트를 청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내놓지 못한 뭔가 있다는 뜻이다. 서로 소주 한잔을 채워주며 이런저런 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채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주가 떨어졌다.

오징어 튀김을 시킨 게 화근이었다. 푸짐하게 담긴 갓 튀겨온 오징어와 고추는 금방 새 옷을 갈아입은 4월의 냄새가 돋았다. 튀김옷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기분을 더 좋게 만들었다. 연신 맛있다는 말을 하며 주고받는 술잔에 취기가 제 먼저 올라앉았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응석부리듯이 일러 바쳤다. 평소 인품이 있어 보이던 그가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몰랐다다느니 젊은 사람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며 고객의 험담을 주절주절 내뱉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튀김이 반은 더 남았는데 간장이 바닥을 보였다. 간장을 더 달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셀프라면서 있는 곳으로 손짓을 했다. 남편의 인상이 돌아갔다. 지금까지 고추장 종지도, 앞 접시도 두 개씩 가지고 왔으면서 왜 간장은 한 개만 가지고 왔느냐고 한다. 사람이 두 명이면 당연 두 개라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것은 원래 하나 나오는 거라며 더 이상은 손님이 해야 하는 일이라 한다.

남편을 달래고 얼른 일어나 간장종지를 들고 갔다. 쟁반도 바치지 않은 채 작은 종지를 들고 오는 걸음걸이에 간장이 출렁거렸다. 조심했는데도 두어 걸음 앞에서 그만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른 휴지로 닦자 남편은 왜 당신이 가져와야 하느냐고 화를 냈다. 다시 아주머니를 불러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 일로 분위기를 망치는 남편이 어이없었다. 허둥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그는 몇 번이나 우리 사무실에 왔다. 필요한 서류와 은행 일처리 준비물까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기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은 일이었다. 막상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 서류 하나를 잘 못 준비해 와서 일이 조금 복잡해지자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밀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말로만 했던 것은 그를 믿은 내 탓이었다. 서류는 그가 가져왔는데 도리어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낮의 그 남자에게 당한 일들을 안주 삼아 남편과 술을 마셨는데, 내 남편이 간장종지 때문에 언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남편과 아주머니 사이에서 몇 마디 중재를 잘하면 웃음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내 발이 슬쩍 아주머니 쪽으로 기울었다.

이 식당은 원래 그렇게 하는 곳이라잖아요.”

원래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이야기는 점점 원론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작 남편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내놓지도 못하고 술자리가 파장이 될 판이었다.

내게서 밀린 남편은 자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계산대에 서 있는 주인에게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밥벌이의 힘듦이 간장종지로 나온다는 생각에 남편을 끌고 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그 젊은 남자를 욕했듯이 아주머니도 퇴근 후 그녀의 남편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산적 같이 생긴 남자가 간장종지 때문에 말이야.”

세상살이의 피곤한 마음을 간장종지만큼 밖에 내보일 수 없는 소시민의 일상이 저문다. 종일 벼르기만 하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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