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우희정

 

 

 

'차르륵 탁탁.'

광고지를 끼우는 손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작업이 끝난 신문은 네 귀퉁이를 반듯이 맞춰 일정 분량씩 지그재그로 차곡차곡 오토바이에 실린다.

새벽 세시, 막 보급된 신문은 잉크 냄새가 향긋하며 갓 지은 밥처럼 따끈따끈하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 신문을 배달하는 손길이 바쁘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 날, 신문보급소에 배달 나갔던 소년이 울면서 들어섰다. 소년의 볼은 빨갛게 얼어 있었고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은 제 또래 아이들이 따스한 잠자리에 있을 시간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했다.

겨울 산동네 비탈길을 더욱더 강파르다. 이 길은 무거운 리어카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청소부 아저씨를 애태우기도 하고 신문을 돌리는 소년까지도 울리는 애환의 고개이다.

평지는 오토바이를 타는 고참들이 배달을 하고 자전거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은 어린 중학생, 막내들 몫이다. 빙판이 진 오르막길은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 신문을 어깨에 지고 오르자면 멍에를 멘 소가 무거운 달구지를 끄는 것만큼 힘이 든다. 거기에다 연말연시면 쏟아지는 백화점 컬러광고지는 신문의 무게를 곱절로 만들기도 한다.

그날따라 누구네 집 발바리가 신문을 돌리는 소년을 얕잡아 보았는지 앙칼지게 짖으며 덤벼들었다고 한다. 쫓기듯 발을 내딛던 소년은 헛발을 디뎌 다리를 접질렀다. 미끄러운 눈길에 신문은 무겁고 삔 다리는 아프고, 너무나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울었다고 했다. 한창 사춘기 핑계를 대며 어리광을 부릴 때인데 부모 없이 가장 노릇하느라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의 고달픔에 마음이 쓰렸다.

그날 이후 나는 서럽게 울던 소년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무시로 떠올라 우울했다.

그런데 어느 청명한 새벽,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을 우연히 만났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씩씩하게 산동네 언덕을 오르고 있는 소년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내 눈에 봉지에 멎자 소년이 멋쩍은 듯 씨익 웃었다.

"고등어니?"

지난가을 할머니가 좋아하신다고 동네 어귀 좌판에서 고등어를 사고 있던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년은 대답 대신 한 번 더 수줍은 듯 웃고는 몸을 돌렸다. 먼동이 터오는 길로 사라지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이 성화의 한 부분인 양 아름다웠다.

나는 그 한 마리의 고등어가 충분히 할머니를 따스하게 하고 소년에게는 힘을 줄 것 같아 적이 안심하였다.

내게도 소년처럼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하던 일에 실패하고 쫓기듯 무작정 나서서 발길 닿았던 곳이 부산이었다. 새벽기차에서 내려 온종일 헤매다 찾아든 영선동 사글세 판잣집은 그나마 내 처지에 과하다 해야 옳을까?

그동안 한 번도 마음 놓고 산 적은 없지만 이렇듯 철저히 빈손이기는 처음이었다. 더 갈데없이 궁지에 몰려 그곳까지 스며든 내 처지가 한심스러워 밤새 뒤척이다 일어나 영도다리 난간에 섰다.

저만치 자갈치시장의 환한 불빛이 눈길을 당겼다.

끌린 듯 들어선 그곳에는 목판 위에 올려진 생선들이 저마다 전설 같은 바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누워 있었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아지매와 그에 걸맞은 억양 짙은 뱃사람들의 흥청거림이 밤을 밀어붙이고 새벽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생동감에 이끌려 내 처지 따위는 잊고 비린내 그득한 시상을 한 바퀴 돌았다. 질척거리는 바닥에서 끈끈한 열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새댁, 이 고등어 한 무더기 갖다 국 끓여 보거래이. 심이 팍팍 솟을끼라."

나는 내 허리의 두 배는 됨직한 아지매의 넉넉한 허리 치수와 기운 빠진 내 심경을 눈치챈 듯 힘이라고 강조하는 말에 끌려 슬그머니 쪼그리고 앉았다.

좌판 위에는 드넓은 바다에서 자유를 누렸을 등 푸른 고등어가 매끈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죽어서도 누군가를 위해 몸을 바칠 수 있다면 헛된 죽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곤고한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는 고등어라니…….

"고등어로 국을 끓여요?'

"하모, 추어탕보다는 쬐께 못해도 먹을 만한 기라. 값은 싸도 영양가는 최고 제.'

고등어를 흐무러지게 끓인 후 체로 걸러 건건이를 넣고 끓인 탕을 이곳 사람들은 즐겨 먹는다고 했다.

딱 바라진 소쿠리에 담긴 고등어 한 무더기를 사서 돌아서는 내 등 뒤에다 대고 아지매가 한결 높아진 음성을 보탰다.

"건건이 살 때 산초가루 잊지 마소."

자칫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때, 새벽시장의 풍경을 섞어 끓인 고등어국이 허리 굵은 아지매 말대로 내게 힘을 주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분명 할머니와 소년은 오늘 하루 그 한 마리의 고등어로 행복할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내미는 고등어를 받아드는 순간 시름을 잠시 잊고 미소 지을 것이고 소년은 자신이 뭔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렸음에 마음 뿌듯할 것이다. 그리고는 냄비 하나 가운데 둔 밥상에 다가앉아 숟가락질을 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재충전되는 힘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