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가린 하늘 / 윤재천


 

 

강렬한 빛의 이면에는 그 강도에 상응하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세상에는 그 속성에 반한 새로운 이면이 존재한다. 모든 질서는 절대적인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반응이라는 상대적 근거와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이론으로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자극제가 되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황에 따른 편의적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절(志節)을 중시했던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에 근거한 고정관념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표리부동이니 이중성이니 하는 말에 곱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시선을 보내는 것이 사람이기에,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연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상반된 것을 죄악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해묵은 의식 때문이다.

한번 세운 뜻을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모습은 믿음직스러운 자세다. 일부 지도자 중에 해바리기적 속성을 처세의 공식으로 조변석개하는 얄팍한 인물이 이해관계도 없이 추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가슴에 뿌리내린 정서가 얼마나 질긴 것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가까워야 할 것은 멀고, 멀리 있는 것은 오히려 친근한 대상으로 머물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표피적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주는 예다. 인간관계란 상대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둔덕이 되어주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도, 종교 사이에도 갈등의 칼을 거두지 않는 것을 보면 어느 특정부류만의 일에 한한 현상만은 아니다.

말로는 한 피를 이어받은 동족이 서로 상대의 몸이나 권위에 흠집을 내느라 바쁘고 이데올로기에 의한 남북관계, 선린우호니 맹방이나 하면서 서로의 감정이 나쁜 일본과의 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지진에 대한 보도로 들려오는 소식 중, 국경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물리적 사실만으로 정서까지 가까울 수는 없다. 미운 정 고운 정 쌓은 사이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그럴 수밖에 없으나,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 처사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이 비극적이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원만한 사이만큼 행복한 것은 없으며,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가정의 불행과 사회의 혼란,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갈등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아무도 그 자리를 넘보아서는 안 되며, 이는 들러리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는 닫힌 마음 때문이다.

실상에 대한 반성은 일어나지 않고, 저마다 극단을 치닫고 있다. 피를 나눈 형제가 남보다 못할 경우가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처럼 절친한 사이가 서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나 담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마음을 의지할 그루터기가 하나 없는 삭막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현대인은 누구나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스스로 외로운 존재다.

이 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마음을 여는 일이다. 개체가 갖고 있는 양면의 속성 중에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것만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도태시켜야 진정한 형화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남도 아닌 사촌이 땅을 샀는데, 정작 막혀 있는 체증이 가셔야 할 내 배가 아파오는 것은 왜일까. 남의 경사스러운 일을 전해 듣는 내 가슴이 허전하고 아린 것은 왜일까. 불행한 처지에 놓여 절규하거나 망연자실한 친지 앞에서 말과는 달리 마음 한 켠에 미소를 머금는 악마적 심사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적 일면이다. 우리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현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주변에서 자기가 우월한 위치에 있고 싶고,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고집하며, 어느 누구도 자신을 초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욕심 때문이다. 상대의 신분 낙하(落下)나 몰락이 힘 안 들이고 수확한 일종의 덤으로 얻은 소득이라 생각하는 유치한 마음에서다. 남에게 닥친 손해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악함에서 비롯된 폐해 - 남에게 끼친 폐해에 불과하다. 우리의 비뚤어진 생각과 눈으로는 피사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 년의 문턱을 들어서는 우리는 그동안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우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반성이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업보를 더하는 일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만이 우리를 지켜나가는 유일한 방도가 된다.

진실은 땅속 깊이 묻어놓아도 언젠가는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어둠속에 묻혀있어도 언젠가는 빛이 나타난다. 서둘러 내보이려고 할 필요도, 사실이 아닌 것이 한순간에 시실로 탈바꿈되지 않듯 진실이 한순간에 거짓으로 바뀌는 것은 어니다. 거짓은 끝까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하늘의 분량은 얼마나 될까.

세상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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