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네 / 김영교
애들이 어릴 때 앞집에 살던 친구 명옥 권사는 오래곤 주로 이주 20년 넘께 살고 있다. 두곳이나 드라이크리닝 사업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와는 가끔 문안 전화통화가 다였다. 그녀가 날 보러 LA에 왔다. 반가운 친구의 방문이었다.
12월 4일 새벽 4시 출발, LAX 도착은 오전 9시. 도착 하자 마자 꽉 짜인 일주일 스케줄을 착착 진행, 피곤 티도 안보이고 몸 움직임이 활기에 차 있었다. 밀린 이야기를 빵에 발라 먹으며 웃으며 큰 목소리가 뜨거운 커피를 마신 게 아침식사였다. 친구는 장보러 마켓부터 가야한다고 했다. 첫날 자기 계획은 캬베츠 포기김치 담그는 일이라 했다. 결국 3병씩이나 담궈 놓았다. 씩씩한 솜씨는 여전했다. 우리 내외가 특히 남편이 좋아하던 그녀의 특미 맛 김치였다. 우리는 만두며, 비지며 별식을 늘 함께 나눠 먹던 참 좋은 이웃이었다. 남편 장례식에 못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 친구는 마침 그때 대형차사고로 병원 입원 중이었고 몸이 호전되자 LA행을 감행한 것이다. 도착한 그날 오후 로즈힐을 방문했다.
헌팅톤 비치며, 폴게티 박물관, PV식당, 친구 옥희자매 그림 전시회, Seal Beach Crepe Cafe 그리고 옛 구역 식구 들과의 만남, 또 공원도 걷고 쇼핑몰도 걷고 잊지 않고 물도 마셔가며 바쁘게 다닐 수 있어서 즐겁고 감사했다. 많은 웃음과 밀린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우리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캬베츠 김치 3병은 집안에서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다.
Fwy를 달릴 때다. 우리 시야 가득 들어온 먼 산봉우리를 덮은 하얀 설경,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그리움이었다. 생각 끝에 마지막 코스는 여행사를 통해 친구를 근교 설산으로 관광 보내기. LA 에서는 보기 드문 귀한 눈, 눈, 눈... 문득 가슴에 눈이 내린다. 즉흥시 같았다. 흔쾌히 떠난 친구는 눈 녹은 눈물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삶이 사계절을 품고 주는 변화는 활력이다. 지금은 겨울 한 복판이다. 국외자의 눈으로 계절의 끝을 바라본다. 눈이 오는 겨울 시즌 앞서 지구별에서 아듀를 고한 사람, 마음 수수밭에 바람이 인다.
의사가 처방한 스피치 데라피스트 엔젤은 영특하다. 시바 이누(Shiba-inu)답다. 진돗개 피가 흐르는 엔젤이 3개월 때 도우미견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남편의 작은 목소리, 그 연약한 에너지의 남편을 보필, 의중을 즉시 파악, 소통이 원활 했다. 엔젤은 애교스럽게 그를 산책에 끌어내는 일등 공신이었다. 필요를 알고서 엔젤은 기막히게 잘 응해주고 감당해 주었다. 눈치 빠른 엔젤이었다. 그의 부재를 알 수 없다는 식으로 휴가에서 돌아온 후* 그는 냄새 맡으며 온 집안을 서성댔다. 손때, 발자국, 흔적들, 질펀한 구석구석인데 주인은 안보여 이해 안 된다고 서성댄다. 넓고 휑한 실내에 왠 낯선 할무이가 부엌에서 자기 밥을 주니 더욱 이해가 안된다는 눈치다. 밥 주는 친구를 따르면서도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시선이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불면 공기는 더 투명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는 빈집은 고성처럼 우뚝하다. 차고 앞에 떨어지는 메이플 이파리들이 내 시선을 가져간다. 그이 없이 맞이해야 하는 남은 나의 쳅터다. 오돌도돌 그와 함께 한 시간이 겹친다. 추억이 내리는 창가, 빅 베어는 흰 눈 가득 덮인 하이얀 겨울이었던 게 어제 같기만 하다. 뜨거운 국국물이 혀 끝에서 아는 체한다.
마주 보며 이웃으로 살던 그 친구는 내일 떠난다. 국군 장병 위문편지로 인연 맺은 남편은 매일 낚시로 은퇴 삶을 잘 살았다. 오래곤 이주는 의사의 처방이었다. 심장마비로 타계할 때까지 낚시는 의사 말 대로 생명연장 갑옷이었다. 딸 둘 아들 다 결혼시킨 그 후까지. 이제 친구는 자유롭다, 그만큼 외롭기도 했을 거다. 그런 친구 위로하는 데 그때 나는 서툴렀다. 친구 남편의 타계를 이제야 공감한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번 기회에 극진히 대접해줬다. 만나고 떠나고 또 만나 그리고 언제 또 반복되어도 반갑다. 떠난 후 또 언제 만날런지, 작별은 늘 섭섭하다. 인간관계, 삶이란 일직 선상에서 기대하고 소망하며 흰 이빨 내놓고 웃어 재낄 수 있는 우리가 오랜 벗인 게 고맙다.
친구의 저녁 식탁에 된장찌개가 끓고 있다. 남편이 좋아했는데 속으로 또 그를 생각한다. 하루 종일 그이 생각이다. 주인 없는 식탁 빈 의자가 애처롭다. 남은 자 끼리 쓰담으며 훌훌 불며 뜨거운 찌개를 먹을 참이다. 이제 과부는 과부 사정을 안다고 보듬고 등 쓰담아 준다. 캬베츠 김치 맛있게 익으면 정작 좋아서 먹어 줄 사람이 곁에 없는 게 속상하다. 나 혼자 먹게 된다. 효도 할려니 기다려 주지 않는 부모 같다. 세상은 이렇게 아쉬움 투성이다. 그래서 철이 드나보다.
짐 쌀 때다. 문득 어머니가 남겨 주신 갈색 밍크 숄이 생각났다. 친구는 사이즈도 맞고 색깔도 맘에 든다 했다. 나보다 더 추운 곳에 사는 친구 어깨를 잘 덮어줄 것이다. 어머니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나니 나 역시 기뻤다. 친구의 어깨는 더 이상 시리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내리네, 이 마을에
추운 겨울 산정에 내리는 눈
오늘은 이 마음에 내리네-
친구의 안착 전화가 기다려진다. 남은 자끼리 교신은 생명확인이다.
동창 이태영 작품 #16381
* 엔젤불임수술후 본가 루시아 시인집에 휴가
8-10-2020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