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는 맞았는데
한영
마이클 요(Michael Yo)는 흑인과 한인 혼혈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우연히 SNS에서 그를 보게 됐다. 그는 다른 코미디언이 자주 사용하는 과한 욕설이나 성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1974년생으로 배우이기도 한 그는, 코미디언으로는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자신을 블랙과 아시안을 합친 ‘블레이시언(Blasian)'의 원조라고 akf한다. 그가 태어날 때는 한흑의 혼혈이 매우 드물었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버지가 한국에 있을 때 시작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우 똑똑하여 매력을 느꼈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보낸 연애편지를 보고 사랑하게 됐다는데, 그런데 사실 그 편지는 다른 사람이 써 준 것이라고, 어머니가 나중에 고백했다.
1970년대 초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특히 유색인종이 없는 텍사스의 한 도시에서 살아낸 젊은 한국 여성의 고군분투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핵물리학 박사과정 연구로 늘 바빴던 아버지와, 언어와 풍습이 다른 미국에서 살아야 했던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마이클은 아마도 많은 심리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코미디에는 웃음과 함께 눈물이 느껴진다. 그는 백인 여성과 결혼했는데 부인은 유난히 백인들만 사는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마이클 부부는 아들과 딸, 두 자녀를 가졌다. 아이들의 몸에 흐르는 각 인종의 비율을 말하며 자기 아이들은 판다 같다고 표현한다. 블래이시언의 삶과 판다 같은 아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조심스러움과 기대감을 함께 품고 그를 바라본다.
마이클의 코미디 소재는 주로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웃음을 주지만 그 안에 인종과 문화 차이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가 흑인이 아닌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이클이 어머니를 일깨우려 하면,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는 박사지 흑인은 아니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웃는다. 27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마이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걸 꼭 말해야 아나?” 관객들은 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낸다. 백인들만 사는 곳에서 그의 엄마는 한국말을 하지 않았으며,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의 영어 발음에 악센트가 생길까 봐, 한식 때문에 냄새난다고 친구들에게 올림을 받을까 봐 걱정되어서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온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한다. 나의 큰아들은 낮에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한국말만 하고 영어를 잘 못해서 유치원에 가서 애를 먹었다. 아들이 알게 모르게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그 후 한국말을 잘 배우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고 내가 한국어로 대답하거나, 영어와 한국말을 한 문장에 섞어 쓰는 그런 대화가 우리의 일상이었다. 음식에 관한 한, 나도 이민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병원에서 일할 때였는데, 환자 한 분이 나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자기에게서 좀 떨어져 달라고 했다. 그날 샤워도 말끔히 하고 한국 음식도 먹지 않고, 출근한 날이었다. 얼마나 무안했던지, 아이들에게도 한국 음식을 강요하지 않게 되었고, 점심 도시락으로는 질리도록 맨날 샌드위치만 싸서 보냈다. 요즈음 김밥을 파는 미국 마켓에서 김밥이 동이 났다는 말을 듣고, 지금이라면 나도 자랑스럽게 김밥을 싸서 점심 도시락에 넣어 줄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면 부모가 잘 못 키웠다고, 비난하는 듯이 느껴진다. 약간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아주 많이 억울하다. 셰프(chef)로 유명한 에드워드 리도 인터뷰에 나와서 한국말이 서툴러서 한국인 앞에서 이야기하기가 창피하다고 하고, 사회를 맡은 한국인 2세대는 그런 기분이 들면 자기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며 웃는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어쩌랴, 예전에 내가 발을 담갔던 물은 이미 멀리 가버렸고, 지금은 새로운 물에 발을 적시고 있으니 그 물이 차갑든 미지근하든 그저 흐르는 대로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