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리를 밟히면
한영
TV에서는 6.25 전쟁 기념식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무심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그해 가을에 출산 예정인 나를 임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닥친 어려움에 몸이 무거운 어머니는 집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 집에 머물렀다. 종로통에서 활달하게 살아오며 동네 반장을 맡았던 어머니는, 전쟁이 나서도 인민군의 주민 동원 명령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다. 그러면서 숨어 있던 청년에게 몰래 정보를 알려 탈출을 돕는, 위험한 용기를 내기도 했다.그 이야기는 어머니의 입이 아닌, 수십 년 후 중년이 된 그때 그 청년을 우연히 만나서 확인되었다. 태교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어머니의 작은 생명줄에 매달려 버텼던 나는, 그녀의 용기를 품고 태어났을 법도 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직 그것을 증명해 보인 적이 없다.
피난 간 남편의 생사도 알 수 없고, 폭격 속에 출산을 앞두고, 시어머니를 돌보며, 더군다나 숨어 있는 시동생에게 밥까지 날랐던 어머니. 양동이에 밥과 반찬을 담아, 수건으로 덮고 인민군의 검문을 피하기 위해 ‘집에 물이 나오지 않아서 우물 있는 집에 물 얻으러 간다’고, 태연한 척하던 그녀. 숨 막히는 공포, 방망이질하는 심장의 소리를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자주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거라고 변명하며 살아왔다.
그 해는 백호의 해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 다른 학년에 비해서 학생 수가 제일 적었다. 전쟁 중에 많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한 반의 대부분이 호랑이띠였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우리 학년은 좀 특이하다고 했다. 해마다 조금씩 학급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 학년은 개성이 강하고 다루기 힘들다고. 대학교에 가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띠를 말하는 12간지에 따른 기질이 다르다는 전통적 믿음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우리 학년은 12년이 아니라 60년에 한 번 오는 흰 호랑이 해이니 특히 매우 다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갓난 아이 때부터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오래전 인터넷상에서 우연히 12간지에 대한 특성을 풀어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출처는 중국이었던 듯하다. 사춘기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고 싶어서, 재미 삼아 읽어 보았다. 기억나는 대로라면, 호랑이띠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머리가 좋고 자존심이 강하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소소한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꼬리를 밟히면 무섭게 화를 낸다.’
좋은 점만 기억에 남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내 성격을 은근히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따뜻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고집하며, 제 잘난 맛에 살아 온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잔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대범하다고 스스로를 포장했지만 어쩌면 무심했던 것이다. 부모 자식 관계도 모든 것이 일방적일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나는 아이들에게 ‘띠’에 대하여 설명해 줬다. 호랑이의 특성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한 마디를 꼭 덧붙였다. ‘호랑이가 꼬리를 밟히면 무지하게 화를 내거든. 엄마가 너희에게 아무리 자유를 줘도 너무 화나게는 하지 마.’ 말끝마다 어설픈 변명처럼 덧붙였다. 이제는 꼬리를 밟을 이도 없다. 밟힌다 해도 화낼 힘도 없다.
가끔 ‘나의 호랑이’ 이미지를 떠 올리면 깊어가는 가을에 낙엽 위에 앉아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몽상에 빠져 있는, 그런 모습이다.
돈이든 사랑이든 셈법에는 부족한 나를 떠메고 먼 길 달려 준 이가 있다. 호랑이를 등에 태운 채 달리고 또 달렸던 말띠 남편. ‘호랑이가 등 위에 올라 타 있으니 무서워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고 푸념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웃는다. 할 말이 없다. 그저 웃는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호랑이의 이미지와 선생님의 이미지가 잘 어우러져 그 특성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