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                                             

   나는 평생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본 적이 없다. 원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다면 진퇴양난의 딜렌마에 빠질 것이 뻔하다. 원수와 한 판의 담판을 벌려 승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율이 일어날 것이다.      

   지난달 나는 헬스클럽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도적 맞았다. 3주 만에 잃어버린 자동차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찾았다는 소식을 보험회사에서 전화로 나에게 알려 왔다. 나는 처음에 차 도적이 내 차를 훔쳐 라스베이거스까지 갔다가 차를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다. 보험회사에서 차를 찾았다는 말만 하고 어떻게 경찰이 차를 찾게 되었는지 경위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차를 찾게 된 것만도 감사해서 일체 더 알기를 원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난데없이 라스베이거스 치안 법정에서 범인을 체포해서 청문회를 연다며 출두명령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서류에 출두하겠다는 서명을 해서 팩스로 보내라고 해서 보내었다. 왕복 비행기 표값과 호텔비를 법정에서 다 지급해 주고 차편도 모두 제공해 주겠으니 청문회에 꼭 참석해 달라고 했다.      

   내가 무슨 귀빈이나 된 것처럼 예우해주는 호의에 너무 놀랐다. 사실 내가 안가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도 꼭 와 달라고 당부를 했다. 내 생각에는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겪은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손해를 알게 함으로 조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게 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청교도의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라 참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 시민이 된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뿌듯해 왔다.      

   비행기로 한 시간도 안 되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니 법정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예약해 준 호텔로 직행하였다.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그다음 날 아침에 법정에 출두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라고 해서 부부인 줄 알았는데 자매간이었다. 두 여자가 차를 훔쳐 제 세상인 양 기분 좋게 타고 다녔으니 무슨 배짱이 그렇게도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잠시 잠깐 낙을 누리며 남의 차를 몰고 다녔지만, 삼척동자라도 알 법한 결과가 뻔한 일을 왜 무모하게 범죄를 저질렀을까.      

   법정에 도착해서 범인을 만나보니 한 범인은 낯익은 멕시코 여자였다. 헬스클럽 수영장에서 자주 만나 인사도 여러 번 나눈 사이였는데 내 차를 도적질하다니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여자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떨구고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미안한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어찌나 불쌍해 보이고 처량해 보이는지 마음이 아팠다. 범인으로 체포될 것을 상상도 못 하고 차를 도적질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훔친 차로 신나게 동서남북을 종횡무진 달렸겠지만 붙잡힐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삼 주일 동안 3,000마일을 달렸으니 엄청나게 많이 달린 셈이다.      

   나는 두 범인이 저지른 소행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인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되 죄는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이 저지른 죗값은 치러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뛴다.’란 우리나라 격언처럼, 법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대낮에 대담하게 범행을 하다니 법의 뜨거운 맛을 보아야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 양심에 철판을 깐 사람들은 예외이긴 하지만…..차를 도적 맞은 후 물질적 손해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심했기에 얼마나 큰 충격 속에서 고통을 당했는지 범인들이 헤아려 줄 것을 촉구했다.      

   범인들은 체포되어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하고 법정에서 나와 대면해야만 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란 우리나라 격언을 범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범인들은 분명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은 원수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자기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피해자를 법정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대채로 차 도둑은 붙잡히기가 힘들고 차가 발견 더라도 폐차 처분될 정도로 많이 훼손 되기가 일쑤인데 나의 차는 잘 보전되어 있었다. 음료수를 쏟아 지저분하고 흠집이 이곳 저곳 있어도 차 자체는 별 이상이 없었다.      

   차고에 들어갈 때마다 텅 비어 있는 차고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마음이 쓰려 왔다. 나의 발이 되어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소중했던 차가 되돌아와 의젓하게 차고에 주차해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얼마나 대견스럽고 감사한지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돌아온 탕자’ 처럼 자동차를 쓰다듬어 주고 후드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나를 영원히 떠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특하게도 주인에게로 되돌아오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나는 황홀하기만 했다. 사랑스러운 개가 집을 나가 헤매다가 집을 찾아 되돌아왔을 때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 상상해 본다. 마치 내가 그 개 주인이 된 기분이다.      두 자매는 용감하였다. 하지만, 그 용감은 만용으로 끝나고 말았다. 도둑이라도 잡는 용감한 시민이 되었다면 상이라도 탈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자기들이 도둑이 되어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되었으니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언젠가 개과천선하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도둑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란 연극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 소리가 무대를 걸어 나오는 나의 귓전에 찡하게 들려왔다.(2012년 1월)/미주문학 문학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