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달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달은 추석 대보름달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대자연의 향연이 베풀어지는 명절 중의 명절이다. 올해에도 나는 이 보름달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한 달 가까이 남가주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흐린 날이 많아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날씨가 흐려져 보름달을 못 보면 어떡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아름다운 보름달을 볼 수가있을 것 같아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우리 집 앞 정원에 다섯 그루의 팜 트리가 20년 가까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이번 폭우로 한가운데 있던 한그루가 쓰러져 내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달밤에 팜 트리 잎사귀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는 일은 나에게 시심을 키워주고 수필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준다.
달은 보름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달도 있고 초승달도 있다. 보름달은 만월이기 때문에 첫째 밝아서 좋고 충만하게 꽉 차서 좋고 모든 소원성취가 이루어진 느낌이 들어서 좋다. 연예인들이 인기 절정에 달한 기분이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성공한 사람들의 기분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꽉 차서 더는 채울 것이 없으므로 잘못하면 나태하게 될 우려가 있다. 꽃이 만발한 것과 같은 인생의 절정기에 있을 때 이 절정기를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노력해야 할것이다.
반달의 모양은 참 아름답다. 푸른바다위에 떠있는 돛단배를 보는 기분이 든다. 넓으나 넓은 푸른 밤 하늘에 별들의 에스콧을 받으며 은하수를 가르고 유유히 항해하는 일엽편주와 같은 반달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그 일엽편주를 타고 항해하는 것 같아 한없이 낭만에 젖어든다. 반달은 자기 반쪽인 또 다른 반달을 그리워 하며 반달을 찾아 먼 여행길을 떠나는나그네와 같다.
초승달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여인들이 즐겨 신던 버선의 오뚝 선 콧날을 보는 것 같아 남다른 감회에 젖어든다. 특히 승무 춤을 추는 무희들이 신던 유별히 뾰족한 콧날이 선 버선. 곡선의 미학이 그곳에 함축되어있고 우리 민족이 곡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한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다. 소매 밑 부분 모양이 그렇고 섶이 그렇고 저고리 둘레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여자의 몸매가 곡선으로 이루어졌듯이. 요즈음 미인들은 눈이 크고 쌍까풀이 져야 예쁘다고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동양에서는 눈이 가늘고 웃을 때 초승달과 같이 활처럼 휘어진 모양을 한 눈을 가진 여인이 미인에 속했다.
이처럼 각각 모양이 다른 달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나름대로 특이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무대 위에 선 연극배우를 보는 것 같아 나는 흥미진진하게 달밤을 감상하면서 향수에 젖어 보기도 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리워해 보기도 하고 상상의 날개를 달고 공상과학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인류가 생긴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달을 쳐다보면서 기뻐하고 한숨짓고 눈물 흘리며 애수에 잠겼던가.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를 지어 읊고 연인에게 연서의 대상이 되어준 저 보름달, 반달, 초승달- 그 기록들을 구슬처럼 꾈 수가 있다면 아마도 지구를 몇 바퀴 돌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님께서 대청마루에 앉으셔서 여름밤에 다듬이를 두드리면서 밝은 달을 쳐다보며 읊조리시던 이태백이를 노래한 가사가 생각난다.
이월에 뜨는 저 달은 동동주를 먹는 달/삼월에 뜨는 달은 처녀가슴을 태우는 달/사월에 뜨는 달은 석가모니 탄생한 달/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오월에 뜨는 저 달은 단오 그네 뛰는 달/유월에 뜨는 저 달은 유두 밀떡 먹는 달/칠월에 뜨는 달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달/팔월에 뜨는 달은 강강수월래 뜨는 달/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구월에 뜨는 저 달은 풍년가를 부르는 달/시월에 뜨는 저 달은 문풍지를 마르는 달/십 일 월에 뜨는 달은 동지팥죽을 먹는 달/십이월에 뜨는 달은 임 그리워 뜨는 달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밤이 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시고 노랫가락을 자아올리면서 노랫가락 장단에 맞추어 다듬이 두드리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태백이 노래도 하도 많이 들어서 잊히지 않고 항상 귀속에서 맴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 대보름달을 쳐다보면서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게 될 것 같다.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태백(이백-방랑시인)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가 빠져 죽어서 수선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태백은 달을 너무 사랑하다가 달을 만지고 싶어 물에 빠져 죽게 한 달은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태백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라 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달을 쳐다보며 한숨짓던 이순신 장군을 내 어이 잊을쏘냐! 임진왜란 때 우국충정을 읊은 이순신 장군의 시를 그 누가 잊을쏘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불끈 잡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
이내 시름 더해 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