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보다. TV 화면에서 오바마 대통령 가족이 백악관 부근 엘립스에 세워진 '내셔널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곧 츄리의 전구에 화려한 불이 켜질 것이다.
카메라는 크리스마스츄리 아래에서 산타클로스와 함께 춤추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껴, 이제는 성난 얼굴로 피켓을 흔들어대는 흑인 시위대를 보여준다. 퍼거슨 흑인소년을 쏘아 숨지게 한 백인경관의 불기소 처분에 항의하는 시위다.
두 장면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완전한 흑과 백의 대비다. 크리스마스츄리는 저토록 현란한 장식을 달고 환한 불이 켜지길 기다리는데. 정작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어디에 걸려있는 것일까.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디로 가실까. 두툼한 겨울 외투에 털모자를 쓴, 예수탄생을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들에게일까. 소외되고 억압 받는 자기들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저들에게로일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사라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는 기분이다.
한때는 카드에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빠졌다며 떠들썩하던 때가 있었다. 백악관에서 발송하는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의 카드에는 ‘이 시즌의 빛이 당신의 마음과 새해를 환하게 비추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라는 성경 구절이 있을 뿐,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없었다. 이 후로 모든 카드나 판촉물에서 크리스마스는 사라졌다.
3,2,1... 드디어 카운터 다운이 시작되고 불이 켜졌다. 커다란 츄리에 색색의 전등빛이 눈부시다. 어두운 밤하늘에 주황빛이 번져나며 하늘에서 내려온 맑은 영혼의 에너지가 주위를 감싸는 것 같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손과 손을 잡고 성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로 평화와 기쁨이 흐른다.
카메라가 다시 시위대에게로 간다. 밤하늘에 퍼지는 불빛을 바라보던 시선이 옆 사람에게로 옮겨지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허공에 들린 손이 슬그머니 내려와 서로 마주 잡는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카드에서 사라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군중 속에서 살아 나오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면 불공평도 불의도 억울함도 모두 풀어주신다고 했는데. 오직 평화와 기쁨과 사랑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흑인소년의 사진 피켓을 든 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오시면 좋겠다. 검은 피부만큼이나 어둡고 깊은 마음에 한줄기 빛으로 오시면 좋겠다. TV 속의 크리스마스 츄리와 그들의 얼굴에 핀 미소를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불러본다. “예수님, 지금 어디 계세요?”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