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날씬한 발레리나가 긴 팔을 허공에 뿌리며 날아오르더니 한 바퀴 휘 돌고는 사뿐히 발을 내딛는다. 하얀 레이스 치마가 살짝 흔들리며 곧추세운 발가락 끝에서 음악이 멈춘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얼굴이 땀범벅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백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밥은 먹었니?’ 엄마의 문자 메시지. 순간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 속으로 어머니의 부드러운 얼굴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떠오른다. 연습실 안이 금방 행복의 기운으로 따뜻하다. ‘햇반’ 선전이다.
‘밥은 먹었니?’ 그 말 속에는 어떻게 지내니? 힘들지 않니? 건강하지? 보고 싶어. 사랑해. 엄마의 모든 마음이 진하게 들어있는 것 같아 뭉클해진다.
내 품에서 자라던 아이들이 필라델피아로,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후, 언제나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쉽게 전화를 걸 수가 없다. 아들이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소곤거리는 듯 “엄마, 지금 도서관이야.” 나직이 말하면 “그래그래” 나도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목을 움츠리고 주변을 살피며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엄마, 지금 나, 바쁘거든...” 딸의 말에 마치 죄라도 지은 양 “미안, 미안” 한마디 던지고는 얼른 끊는다.
‘햇반’ 선전을 보니 울컥 나도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어진다. 안부조차 시원하게 묻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하는 아쉬움을 문자는 대신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한글을 잘 모르니 영어로 할 수 밖에 없는데, Did you eat? Are you hungry? How’s your lunch? 무슨 말을 해도 '밥은 먹었니?' 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문자를 보내면 아이들은 환한 미소는커녕 What the heck? 할 것 같다.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 PTSA(학부모와 교사, 학생들 모임)의 신문 편집을 맡고 있었다. 신문은 매달 발간되는 까닭에 교무실로 교장실로 인쇄소로 바쁘게 들락거리며 백인 학부모들과 함께 할 일이 많았다. 어느 이른 아침, 학생회 간부들과 간담회를 한 유태인 학부모의 원고를 인쇄소에서 받기로 했다. 나는 아직 아침을 먹지 않은 탓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굳모닝’ 인사만 하기는 너무 밋밋해서 “Did you have a breakfast?” 하고 물었다. 내 딴에는 밥은 먹었니? 아주 정다운 인사를 했는데. 눈이 동그래진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치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순간 나는 민망했다. 마치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들의 정서로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인사가 그들에게는 남의 프라이버시를 엿보는, 실례를 범하는 일이었다.
여름 방학을 며칠 앞 둔 날이었다. PTSA 임원들이 한 학년의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초청은 회장이 했지만 내가 대접을 하겠다. 라는 말이 없으니 각자가 돈을 내는 dutch pay 자리인 줄은 알고 나갔다. 나는 음식 값을 열 두 명이 똑같이 나누어서 내는 줄 알고 제일 값이 싼 시저 샐러드를 시켰다. 조그만 아시안 여자가 염치도 없이 비싼 요리를 시켰다는 인상을 줄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어떤 여자는 씨푸드 파스타를, 어떤 여자는 비프스테이크를 시키는 것이었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샐러드를 후딱 먹고 나니 조금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회의가 모두 끝나고. 종업원이 계산서를 갖다 주었다. 여자들은 차례차례 계산서를 들여다보고는 어떤 사람은 자기 손바닥에, 어떤 사람은 내프킨에. 연필로 숫자를 적으면서 뭔가를 계산하느라고 바빴다. 계산서가 드디어 내게도 왔다. 영문을 몰라 옆 사람을 쳐다보았다. “네가 먹은 음식 값에다 세금을 붙인 금액만 내면 돼.” 그때서야 여자들이 왜 그렇게 비싼 요리를 시키면서도 당당했는지,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계산에 몰두했는지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문화에 편입된 dutch pay가 때로는 합리적이란 느낌이었다가, 때로는 너무 정이 없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금액을 일률적으로 계산해서 나누는 우리들의 dutch pay는 그나마도 인간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차이는 특별한 사건이나 관계에서 느끼는 게 아니다.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매일 만나는 이런 작은 일상에서다.
'밥은 먹었니?' 단순히 묻는 말인데도 왜 그 속에서 나오는 촉감은 이렇게 다른 걸까. 한국과 미국의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말의 느낌도, 살아가는 모습도 서로 멀기만 하니 단순한 말과 평범한 행동도 나는 조심스럽다. 상대가 비록 자식일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밥은 먹었니?" 제게도 아주 친숙한 질문 입니다. 일찌감치 집을 떠났던 내 아이들에게 저도 수없이 해댄 질문이어서....
지금도 내 전화를 받는 자식들은 지네들이 먼저 묻는 답니다.
"밥은 먹었니?"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