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틴에이저로 돌아가고 싶어
"엄마, 나는 다시 한 번 틴에이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는?"
봄방학이라고 집에 온 아들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한다.
"틴에이저라니? 언제를 말하는 거니?"
"7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나는 깜짝 놀랐다.
"다시 돌아가면 뭘 할 건데?"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클럽 활동도 열심히 하고..."
왈칵 눈물이 나려는 걸 참았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그때로 돌아가면 너를 더 이해하고, 도와주고, 다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돌아보니 엄마가 잘못한 게 너무 많구나."
아들과 나는 말을 잊은 채 각자의 옛날로 돌아갔다.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시작된 첫 사건은 7학년 때 터졌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끝내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2교시 수업을 빼먹고 몰래 학교로 들어오다가 들켰다는 것이었다. 방과 후 두 시간을 더 학교에 남아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는 벌이라 알려 준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과 나는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중학교 수학 과정을 이미 끝낸 아들이 인근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 클래스를 듣고는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마침 배가 아파서 1교시 수업을 결석하고 2교시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던 친구랑 학교 현관 앞에서 딱 마주쳤단다. 배가 아파서 그저 드러눕고만 싶은 친구랑, 형과 누나들 속에서 힘든 한 시간을 보낸 아들은 공부하기 싫다는 딱 떨어지는 공통분모를 눈짓으로 주고받은 뒤 교실 대신 그 친구 집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부모가 모두 출근을 해 버린 빈 집에서 한 녀석은 방바닥에 배를 깔고, 한 녀석은 소파에 누워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고 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2교시가 끝나는 시각이었다. 3교시가 이미 시작 된 어중간한 시각에 허둥지둥 가방을 메고 들어오던 두 녀석이 교장 선생님께 꼼짝없이 걸린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라빈은 만일 싸움판이 벌어진다면, 맨 앞에 서서 '싸우자~' 하고 뛰어 나갈 아이니까 관찰을 잘 하십시오.”
그 후, 나의 신경은 곤두서기 시작했다. 혹시 갱단에 연루되면 어쩌나. 담배를 배우는 건 아닐까, 포르노 잡지를 숨겨 놓고 보는 건 아닐까, 저 친구는 좋은 친구일까, 나쁜 친구일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아들에 대한 나의 마이크로 메니지먼트가 시작되었다. 모범생이 되지 못하면 당장 갱이 될 것 같은, 내 머리 속에는 오직 두 가지의 극단적인 모델만 존재했구나 하는 깨달음은 아들이 졸업하고 나서야 왔다. 그 중간 지점은 아예 없는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친구 간섭을 많이 했지? 나쁜 친구 만날까봐 누군 만나라. 누군 만나지 마라."
"그러게 말이야. 그 나이의 아이가 나쁘면 얼마나 나쁠 거라고... 그땐 엄마가 정말 싫더라. 아무 것도 모르면서 상상으로 나를 나쁜 아이 취급하고. 아무 설명도 없이.“
아들 걱정 때문에 내 마음이 무거웠듯이 아들 또한 사랑으로 포장된 엄마의 간섭과 집착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엄마, 나는 다시 한 번 틴에이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응,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너를 다시 키워보고 싶어."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쁜 일을 서둘러 상상하여 아이에게 상처 주는 그런 일은 안할 것 같다. 최소한. (한국일보 교육칼럼 2007)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