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에 숨결을

                        이 종 운    

교회 등록 첫날, 초면인 J 집사가 ‘성도 같고, 이름 돌림자도 같은데다 자신의 둘째 형님과 닮아 친근감이 든다며 앞으로 형님이라 부르겠다.”라며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도 교회 등록한 지 며칠 안된다.’라고 했다. 호감이 갔다. 집은 도시 외곽을 흐르는 산타 애나 강 건너 골프장 가까이 있었다. 그가 손수 지었다는 아담한 별채로 나를 안내했다.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겠다.’라 생각하며 그를 따라 마당에 들어선 나는, 그 자리에 멈칫했다. 베틀과 물레, 서부 영화에서 본 마차와 작은 대포가 바로 앞 마루에 놓여 있고, 방문 위 천장에는 스위스 알프호른 악기가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 선 나는 또다시 멈칫 서고 말았다. 몽골 징과 북, 유성기와 바이올린, 필사본 성경과 고문서, 중세 서양 창과 장검, 헬멧 등 진귀한 고물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는 고물 수집가였다.

그의 고물 수집에 얽힌 사연도 많고, 재미있을 것 같아 이것저것 물었다. 40여 년 전, 네바다 지역을 여행하다 야드 세일 중인 한 원주민의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어릴 적 충청도 고향집에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의 베틀과 물레가 있어 두말 않고 차에 실었다. 그날, 그렇게 구입한 베틀은 그가 수집한 고물 제1호가 되었고, 주말에는 야드 세일과 스왑믿 시장을 기웃거리는 취미를 갖게 한 출발점이었다.

낡은 유성기는 동네 스왑믿 시장에서 만났다. 일제 때, 항일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집에서 요양 중이셨던 아버지 생각에 부르는 값을 깍지 않고 샀다. 닦고 기름칠하고 나니 새것 같이 되었다. 아버지가 애청했던 바로 그 유성기의 음질과 같은 것을 확인하면서 자꾸 목이 메었다. 아버지가 즐겨 듣던 레코드판을 찾느라 옛 기억을 더듬어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 새 쌓인 고물 음반이 100 여 점이나 되었단다.

어느 주말, 야드 세일하는 동네에서 알루미늄 파이프 뭉치가 눈에 띄었다. 버리기 아까워 고철로 팔 양으로 끈으로 묶어 한쪽 구석에 놓아 둔 것이었다. 헐값으로 그 뭉치를 샀다. 집에 돌아와 윤이 나도록 닦고 또 닦았다. 기름칠한 뒤, 길이와 굵기 순으로 늘어놓고 구글 검색을 했다. 악기일 것 같다는 그의 짐작은 옳았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제작한 ‘셰이커 차임 오르간(Shaker Chime Organ)’이라는 악기였다. 길이와 굵기에 따라 틀에 매달고 흔들어 보았다. 청아한 소리가 아주 매혹적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연주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연습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힐링을 체험하고 자신감도 생겼다. 교회 예배시간 특별 연주를 자청했다. 연주가 끝나자 교우들은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것 같다는 간증도 했다.

고물 알루미늄 뭉치를 산 집으로 찾아 가 주인을 만났다. 연주한 동영상을 보여주고 ‘값을 제대로 치르고 싶다.’라며 웃돈을 내밀었다. 집 주인은 손 사례를 치더니 ‘돈 대신 곧 다가올 손자의 생일 날, 축하 연주를 해줄 수 있느냐?’라고 했다, 약속하고 생일날, 그들 가족과 친척들 앞에서 연주를 했다. 또 한 번의 갈채와 환호로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 뒤, 그들은 서로 가족을 집에 초청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고물을 만나는 과정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떠올랐다. 넓고 넓은 세상에서 J 집사가 베틀과 유성기와 오르간 등을 만난 사건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 장인(匠人)과의 연결고리도 신은 처음부터 예비해 두셨던 것만 같다. 제작 년대와 용도, 재질과 작업과정 등 궁금증을 알아가노라면 그 장인의 고뇌와 지혜, 탁월한 능력과 인류를 위한 공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수집한 고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롭다고 했다. ‘돈으로 환산하며 재산 가치가 엄청날 것 같다.’는 사람, ‘인간의 편익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과거의 세계를 그려보며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고물과 골동품으로 나누며 처음부터 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들은 닦고 또 닦고 숨결을 불어넣듯 기름칠하고 사랑하다 보면 고물이 골동품으로 빛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아예 무감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듣다 보니 70년 대 말, 파리 주재원으로 살 때, 생투앙 벼룩시장에 구경 갔다가 산 고물 목제 가구가 떠올랐다. 루이 16세 때의 서랍장이다. 반세기 가까이 TV 밭침대로 거실 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자주 닦게 되고 때로는 레몬 광택제로 윤을 내곤 한다. 볼품없었던 고물이 지금은 빛나는 골동품으로 사랑받는 가구로 대접받고 있다.

팔순을 앞둔 J 집사는 고물을 모으고 닦고 아끼며 여기까지 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듯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고물 하나하나에게 애착이 간다.’라며 자식과 같은 고물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고 평가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주고 싶다.”라고 했다.

마침 ‘미주 최초의 한인 촌’이기도 한 리버사이드 시 정부의 도움으로 현실화 단계에 있는 도산 안 창호 기념관 건립 추진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도산기념관이 계획대로 건립돼 거기 전시된다면 참 좋겠다.”고 기뻐했다. 오랜 기간 공들여 모은 골동품을 기증하겠다는 그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고물들을 보며 나도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빛나고 유용한 때도 있었겠지만, 나이 들고 때가 묻어 있는 지금은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날까지 고물에 숨결을 불어넣듯 갈고 닦으며 기름칠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귀한 존재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새삼 매무새를 여미게 된다. (끝)    4-4-2024 @Corona, 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