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걷는 동안 / 김지은- 2024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대상
“나 3월에 결혼식 올리려고.”
언니의 말에 엄마와 나는 떨리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으며 웃음을 지었다.
언니에겐 대학생 때부터 7년간 사귀어온 남자 친구가 있었고 둘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의 연인인 동시에 든든한 친구이자 선생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언니는 결혼을 이야기했다. 그래그래 우리도 그렇게 믿는단다. 엄마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글썽였다. 눈물은 금세 나에게도 언니에게도 옮아갔다. 문제는 아빠였다. 그는 언니의 결혼 소식에 환하게 웃지 못했다. 허허 웃으며 축하해주긴 했으나 언니는 보고 말았다.
아빠의 웃음 뒤에 아주 잠시 비친 슬픈 표정을. 엄마와 내가 흘린 눈물보다 더 무거운 눈물이 그의 얼굴 깊숙한 곳에 맺혀있음을.
엄마와 내가 웨딩드레스니, 신혼집이니 조잘댔지만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예비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빠가 본래 감정표현이 격한 사람이 아니라서? 언니는 둘 다 아닐 거라고 했다. 아빠는 종종 언니의 남자 친구와 단둘이 식사하거나 야구를 보러 다녔다. 언뜻 아빠와 언니의 남자 친구가 부자지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언니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난 날부터 지인들에게 자기 딸이 얼마나 좋은 사람과 만나고 있는지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언니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아빠야말로 누구보다 자신의 결혼을 기뻐할 거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면 평소대로 돌아올 거라던 엄마의 예상과 달리 아빠는 내리 안방에 앉아 멍하니 티브이만 응시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는 나의 물음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와 어색한 상태를 유지했다. 웨딩플래너를 만나 식장을 예약하고 드레스를 맞추고 청첩장을 골랐다. 세부적으로 결혼식 당일 일정을 정하는 와중, 웨딩플래너의 한 마디가 언니의 마음에 날카롭게 꽂혔다.
“그럼 신부님, 입장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예전에는 신부 측 아버지와 나란히 입장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신부 혼자서 입장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
아빠는 언니가 고등학생일 때 다리 한쪽을 잃었다. 당시 그가 근무하던 곳은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 빵을 납품하는 공장이었다. 빵을 자르던 기계에는 자동멈춤 장치가 없었고 그 기계를 도맡은 사람은 아빠 혼자였다. 휴식시간 없이 열 시간 동안 내리 일하던 그는 그 스스로 멈출 리 없는, 도시의 커다란 송곳니 같은 기계에 순식간에 발이 끼었다. 온몸이 끼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의 비명을 듣고 멀리서 달려온 동료가 기계를 멈춰주었다고 했다.
공장 측은 사고를 ‘노동자의 부주의함’때문이라며 아빠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언니가 방송사에 끈질기게 제보한 끝에 공론화되어 햄버거 가게를 불매하는 시민들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여론이 일자 급기야 공장 측은 입장을 바꾸어 아빠의 사고를 산업 재해로 인정하고 보상금과 치료비를 지불했다. 대형 병원의 보장구실을 수십 번 오간 끝에, 아빠의 잡아먹힌 다리 한쪽은 전보다 더 얇고 딱딱한 다리로 돌아왔다. 그는 금세 의족 생활에 적응했으나 한여름에도 긴 검은 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맘때쯤 자신과 키가 비슷하게 자란 언니가 어깨동무로 절뚝이는 발을 보조해 줄 때마다 아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랑 나란히 입장할 거야. 그런 줄 알아.”
언니가 안방 문을 벌컥 열어 소리쳤다. 씩씩거리는 언니 앞에서 아빠는 끝내 입을 열었다.
“너 창피하게 내가 식장 한가운데에서 절뚝이면 어떡하니…….”
의족은 탁,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그 미세한 떨림을 집에 있던 모두가 느꼈다. 마치 오래 걷거나 조금이라도 뜀박질을 한 날이면 평소보다 세게 진동하던 의족의 발목 부분처럼.
그러나 언니는 결혼을 선언할 때보다 더 견고한 목소리와 자세로 자기가 정말 창피해할 것 같냐며 물었다.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단지 언니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어떤 결의를.
결혼식 전날 밤, 언니는 신발장 앞에서 한참을 쭈그려 앉아 아빠의 검은 구두를 닦았다. 아빠가 직접 시내에 나가 사 온 구두였다. 사고 이후로 아빠가 자기 신발을 산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엄마와 나, 언니는 암묵적으로 그의 결심을, 진동을 보았다. 언니가 그 검은 구두를 닦을 때, 모두가 잠들었으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모두 깨어있었다. 신발장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애써 모르는 체 하면서.
“자, 그럼 신부 입장!”
문이 열리자, 여느 때처럼 팔짱을 낀 언니와 아빠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아빠의 바짓단과 구두 사이로 금속 다리가 보였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하객들의 미소를 배경 삼은 두 사람의 걸음은, 다소 느렸다. 떨림이 설렘으로 천천히 번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지난밤 언니가 신발장 앞에서 흘린 눈물처럼 아빠의 절뚝이는 걸음처럼 결혼식장은 충분히 반짝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