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을 먹으며 / 정성화

 

 

남편이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다. 배에서 가족 생각이 날 때 나를 어떤 모습으로 떠올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던 모습’이라고 했다. 실망스러우면서 민망했다. 그만큼 내가 삼겹살을 자주 구워 먹었다는 얘기다.

입맛도 연어처럼 제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걸까. 근래 들어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저녁별이 하나 둘 돋아나는 초저녁에 평상에 둘러앉아 먹었던 양푼이 비빔밥, 겨울이면 자주 상에 올라오던 갱시기죽. 아버지가 낚시로 잡아온 민물고기로 바특하게 조려낸 생선조림 등. 그 때는 분명 먹기 싫었던 음식들인데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어쩌면 음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우리 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유난히 뿌리채소를 많이 먹었다. 밥상에 무김치가 빠진 적이 없었고, 우엉조림, 연근조림, 도라지무침도 자주 올라왔다. 삶은 고구마와 감자는 반가운 간식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엉이 좋았다. 우엉을 씹을 때의 아삭거리는 식감과 향이 좋았다. 그래서 지금도 김밥을 만들 때 우엉을 넣는다. 말아놓은 김밥 안에서 단무지는 단무지대로, 어묵은 어묵대로, 햄은 햄대로 제 맛을 주장하는데, 이 때 수더분한 맛을 지닌 우엉이 나서며 모두의 맛을 끌어안는다.

껍질이 거무스름하면서 흙이 묻어있다 보니 우엉은 채소진열대에서도 가장자리로 밀린다. 씨름선수의 장딴지를 연상시키는 무나, 상큼 발랄한 아가씨 같은 느낌의 당근, 여인의 쪽진 머리를 닮은 마늘, 이에 비해 우엉의 생김새는 딱 ‘경상도 남자’의 이미지다.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 않을 듯한 무심함이 느껴진다. 일 미터가 넘도록 자라면서도 중간에 절대 휘지 않는다. 우엉을 즐겨먹으면 강직한 성품으로 자란다는 옛말도 이런 점에서 나왔을 게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연필을 깎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연필을 깎다보면 은은한 나무 향이 작은 공부방을 채웠다. 코와 마음 언저리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우엉에서도 그런 향이 난다. 어쩌면 나는 그 나무향이 그리워 우엉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우엉은 속이 단단한 편이다. 간장 물에다 넣고 끓여도 금세 간이 배지 않는다. 그리고 썰어놓으면 하얀 속살이 이내 거무스름해진다. 땅속에서 조용히 묵상하며 지내다가 땅위로 올라와 보니 세상이 너무 번잡하다는 느낌을 받고 당황해하는 걸까. 썰어놓은 우엉의 단면에 나이테가 하나 보인다.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우엉은 그 나이테 안에 자신의 다짐을 모아두지 않았을까. ‘땅속이 컴컴하지만 겁낼 것 없다, 흙 속의 미생물들이 분명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내 속도대로 나아가자.’ 깊은 땅 속에서 우엉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을 것이다. 우엉을 먹으며 나는 그런 다짐과 숨결을 느껴보려 한다.

수수한 모양만큼 우엉은 그 물성(物性)도 무던하다. 부드럽고 물 빠짐이 좋은 흙에서 잘 자라며 추위도 잘 견딘다. 나에게 만약 텃밭이 생긴다면 우엉을 길러보고 싶다. 햇살 좋은 사월의 어느 날 파종을 하고나면 곧 싹이 날 테고 잎도 무성해지겠지. 유월이면 엉겅퀴를 닮은 보라색 꽃이 수줍게 피어나겠지. 바람이 선선한 어느 가을 날, 나는 우엉을 조심스레 뽑아 올리며 우엉의 오랜 ‘하안거’에 감격하지 않을까.

얼마 전 어느 배우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난타’ 공연을 전 세계에 알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총 감독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근래에 황반변성과 망막색소 변성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눈 앞 30센티미터 안에 들어오는 것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연극무대에서 ‘리어왕’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는 그를 보면서, 나는 우엉을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정진한다는 의미에서다. 그의 삶에서 나는 묵직한 ‘향’을 느낀다.

사람의 외모야 어떻게 가꿔본다고 하지만, 내면으로부터 풍기는 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우엉이 품고 있는 향도 그냥 온 게 아니라, 오랜 인내와 기다림, 강직함에서 온 게 아닐까. 번듯한 열매를 맺는 삶도 좋지만 온전한 뿌리 하나를 남기고 가는 삶도 의미 있을 것이다.

‘우엉’이란 글씨를 보니 ‘ㅇ’이 세 개나 들어있다. 둥글게 썬 우엉조림을 먹으며 모난 내 마음도 둥글둥글해지길 바란다. 그 소박한 향이 나에게 배어들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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