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엄영선 수필가
(조선 문학사 조선수필 문인회편집 2015년 제3호 기재)
엄영선
음악이란 예술은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에 감동을 주는 신(神)의 선물이다. 앤드루 (Andre Rieu Violin) 연주 ‘나의 길’(My way)’ 을 오랜만에 들어보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가사 있는 노래도 아니요, 단지 바이올린 멜로디 연주에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나간 날들이 가슴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비감이 잠기는 멜로디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임태경의 ‘열애’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타서 조여드는 것 같은 자극을 느꼈다. 음악이 안겨주는 희로애락에 취하는 하루가 고맙기만 하다.
감정의 동요와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음악이 아닌가 싶다. 안드레 훌륭한 악단연주로 임태경의 노래를 들으면 인간이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었는가? 하는 감격 속에 빠져들어 밥 안 먹고도 배부른 것 같은 풍요로운 감성을 느낀다. 구순이 넘은 나에게 이토록 변함없는 정서를 이어가게 살리시는 주님에 감사할 뿐이다. 인간의 미와 지. 인성의 문제는 내적이며 성격과 행동은 외적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살아왔다. 앞으로 남은 생도 인격을 바로 세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다. 그 삶을 위해 지팡이 역할을 해주는 첫째 요인은 음악을 듣는 일이요, 둘째는 글 쓰는 일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나는 외로움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듣고 책과 함께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구친다. 나이 들어 마음에 꼭 드는 벗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 살면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구축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노년이 되면 만남의 관계도 줄어서 쓸쓸하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문인회 모임이 있어 다행이다. 글을 쓴다는 목적으로 모여 신선하다. 젊은이들이 이 노인에게 생기를 넣어주고 사랑의 유대관계가 되어 주어 고마울 뿐이다. 그밖에 만남은 많지 않아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구순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만남 그 자체가 기쁘고 신나고 재미난다는 것을 젊은 친구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금은 백수를 누리는 세상이다. 그들로 머잖아 백수를 누리는 대열에 서게 된다. 그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외로움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강도가 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좋은 세 분과 같이 합석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좋은 현역에 계신 60대 후반, 70대인 그분들은 무료한 나의 일상과 달리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는 훌륭한 분들이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젊은 대상이니 서글픈 위축감이 오기도 하지만 감사함으로 그들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느낌은 다르지만 그들의 젊음을 통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을 때마다 젊어지는 희열을 느낀다. 개인마다 인격이 달라 살아온 모습도 독특하지만 묻어나는 감정, 감각, 지성, 품위의 미묘한 하모니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 만난 이들은 만날수록 기분 좋은 분들이다. 그중 한 분은 푸른 산등성이에 피어 오르는 목화 구름 같은 분으로 인간미를 느낀다. 그래서 그분을 따르며 존경한다. 나에게 몇 안 되는 진실한 친구이기도 하다. 나 이제 호박꽃이 되었으나 호박꽃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바람같이 편하게 살랑살랑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친절해지고 더욱 순수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온화하고 인정 깊어져야 한다는 책임은 느낀다.
오늘 교회 친교실에서 ‘엄 작가님 감사해요.’ 라고 인사를 받았다. 60대 후반의 내가 좋아하는 선임 권사님이다. 항상 나를 만날 때마다 사랑으로 대해 주는 권사님이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낸 사이가 되어 요즈음은 가정의 속상한 일을 털어놓기도 한다. 남편하고 사이에 갈등이 생겨 잠을 설치는데 그때마다 엄 작가님의 책을 머리맡에 놓고 읽으면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고 했다. 부족한 내 글이 누군가 읽고 위로를 받는다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 단 한 분이라도 좋다. 삭막한 인생길에 위안을 받았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로 날마다 하나님께 즐거운 찬양을 드린다.
사람은 저마다 담고 있는 삶의 의미에 따라 인생관이 변하고 행복지수도 달라진다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 여생 즐거운 삶을 위하여 날마다 좋은 사색을 하며 음악 듣기와 글쓰기에 전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