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엄영선 수필가 

조선 문학사 조선수필 당선작

엄영선


본토에 사는 딸이 가족여행을 주선했다. 각자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 며느리, 엄마가 만나는 일주일,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만나니 들뜬 마음으로 설렘은 동심이 된다. 삶의 기쁨이 가족 안에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 가족 간의 만남이 늘 보고 싶은 그리움 속에 세월이 흘러갔다. 서로의 삶이 다르기에 가족이란 공동체가 분산되는 슬픈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가 만난 곳은 본토 서해안 있는 뉴포트 (Marriott Resort Newport Beach, CA)이다. 하와이에서 떠나 뉴포트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되었다. , 아들, 며느리가 먼저 도착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은 매년 오가며 보니 여전하나 본지 오래된 먼 곳에 사는 아들, 며느리와의 해후는 찡한 아픔으로 다가 왔다. 포옹하는 아들의 눈빛이 영롱한 아침 햇살로 다가왔다.

 

  “왜 이렇게 상했니. 어디 아프냐?”

아니야 건강해, 엄마 보고 싶어 비행 중 잠 못 자서 그래

 

만남의 기쁨에 젖어 렌터카를 타고 희희낙락 시가지를 돌았다식사하고 해 질 녘에 뉴포트 단지에 도착했다. 리조트는 아름다운 낙원의 동산같이 만들어 놓았다. 창밖으로 바다를 품은 붉은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럽게 치장한 리조트와 어우러져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언덕 위의 풍광이다. 아들과 포옹했던 열기가 온몸으로 솟구치고 있다. 붉은 노을은 타들어 가는 그리움을 가슴으로 삭이는 내 마음의 불꽃처럼 보였다. 어느 자식이 귀하지 않을까만은 여유롭게 살아가는 딸은 내 마음의 위안이 되지만 아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이른 아침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아들 손을 잡고 걷는 길은 오랫동안 나누지 못한 마음의 정을 해갈시키는 단비처럼 달콤했다. 싱싱한 바닷 바람, 숲속의 향기, 생동하는 새들의 노래, 그 숨결을 마시며 걷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져서 일 순간에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한참을 걸어 바닷가 언덕길에 도달했다.


엄마 내 등에 업혀아들이 등을 돌려댄다. 사양치 않고 아들 등에 업혔다.

엄마 왜 이렇게 가벼워졌어?”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단물 다 빠졌으니 그렇지…”

 

아들은 나를 업고 한참을 더 걸었다. 바닷가에는 멀리한 한 쌍이 걷고 있을 뿐 파도만 철썩인다. 부서져 내리는 파도를 리듬 삼아 우리 넷은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사랑의 하모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야호! 연발하며 그동안 묵혔던 시름과 탄식을 푸른 파도 위로 다 띄워 보냈다.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순간이다. “시간아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 머물어다오이제 엄마는 석양빛 짙게 밴 슬픈 나이가 되었으나 자식 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너무 아쉽고 가슴 짠한 일이다. 어디 나뿐이랴, 세상의 모정은 하나같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지 싶다. 상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엄마로서 다하지 못한 사명감이 진한 아픔으로 남는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성의 위대함은 모성애에서 온다는데 지금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후회와 유감이 가득하다. 아들이 열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돈암동 개천 다리 위에 줄을 세워 놓고, 다리에서 용감하게 뛰어내리던 용감한 아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친 데도 없다며 자랑을 하던 너를 보며 엄마는 기절초풍하여 야단을 쳤었지.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용감무쌍한 담력은 어디로 가고 야윈 모습이 애처롭다. 어려서부터 낙천적 기질에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는데 미국으로 잘못 왔나 싶어 가슴이 아프다. 아들의 고된 삶의 흔적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난다. 볼수록 살아오는 동안 엄마가 선택한 우매함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아픔으로 살아난다. 고국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 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눈 앞을 가린다.

 

시간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휴가 마지막 날 저녁이 되었다. 베란다에 차려진 식탁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 놓고 식구가 모여 앉았다. 서쪽 하늘엔 붉은 장미를 뿌려 놓은 듯, 망망대해(大海)의 황홀한 노을 색이 푸른 바다 위로 번져 나간다. 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의 절묘함을 식탁 위에 초대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지상 최고의 값진 이별의 저녁상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이별의 비행장. 딸이 먼저 손을 흔들며 떠났다. 딸이 사준 자주색 새 옷이 내 마음 더 먼저 바람결에 나부꼈다. 다음은 아들, 며느리 차례다. 이별의 포옹을 하니 찡한 설움이 울컥 솟구친다. 불에 살며시 뽀뽀하고 그들도 떠났다. 텅 빈 에어포트. 그들이 떠나간 자리엔 쓸쓸한 바람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이제는 내 차례다. 기묘하게도 자식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떠나게 되어 안심이다. 푸른 하늘에 해맑게 웃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회자정리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 순리는 가혹하지만 순응해야 한다. 자식들과 함께했던 달콤한 순간들도 떠나보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내 숨결이 젖어있는 보금자리인 하와이에서 남은여생 노인에게 온다는 사고(四苦, 빈곤, 질병, 고독, 무의)를 잘 챙겨가며 사는 게 복이 아닐지 싶다.

 

참 아름다운 세상을 지팡이 삼아 삶의 존귀함을 잃지 않는 

지혜롭게 행복한 노인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