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멋진 러너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여자애는 조칸 줄 알겠는데, 헌헌장부 젊은 러너는 초면이다.
누구냐고 묻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넌, 조카 얼굴도 잊었냐?"다.
"엥? 제이슨?"
가장의 책무와 중소 기업 사장으로서의 중압감에 허덕이는 조카를 떠올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처럼 멋있던 아이가 이젠 퉁시무리한 삼십 대 후반의 아저씨로 변해버린 게 믿기지 않았다.
여자 조카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날렵하고 멋있던 아이가 지금은 달리기도 그만두고 한국까지 나가서 비지니스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언니 집안은 20여 년 전부터 달리기 가족이었다.
처음엔 당뇨기가 있는 형부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달리기에 빠져 마니아가 되어 갔다.
언니는 LA 최초의 한인 마라톤 클럽 KART의 초창기 팀맘이었고, 이후 오렌지 카운티 이지러너스에서도 팀맘으로 봉사했다.
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 대표 육상 선수들을 데리고 전국 체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형부는 풀 마라톤을 열 번 이상 완주한 선수며 두 아이도 대표 선수로 뛰었다.
지금도 언니와 형부는 한인 커뮤니티 건강을 위해 목요일과 토요일 각각 스트레칭 지도를 하고 있다.
난, 그토록 달리기에 열 올리고 있는 언니 가족을 보면서도 강 건너 등불 보듯 했다.
운동이라곤, 대학 졸업 후 근 40 여 년이 넘도록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던 내가, 신문에 난 마라톤 교실 기사에 꽂혀 느즈막에 달리기에 입문하게 되었다.
햇수로 삼 년 째 접어 들면서 어느 새 하프 마라톤을 일곱 번 뛰었다.
언젠가는 풀도 한 번 뛰어 봐야겠지만, 아직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하프든 풀이든, 결국은 연습이 열쇠다.
그에 따라 몸도 말해 주리라.
달리기는 힘든 운동이지만, 멋진 운동이다.
함께 뛰면서도 홀로 뛰는 운동이기에, 군중 속의 달콤한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코스가 다른 타도시 경기에 참가하다 보면, 관광까지 겸하게 되어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길은 늘 열려 있고, 파트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
멤버십도 필요 없고, 매번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내 두 다리로 대지를 밟으며 치고 나갈 뿐이다.
그야말로, 마라토너 마니아 강명구 선생의 표현대로 '길과의 세레나데'다.
젊은 여자애들이 탱탑을 입고 꽁지 머리를 달랑이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장장 26마일이 넘는 고통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3만 여 명의 선수 중 찡그리며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설레임과 기대에 찬 모습이다.
얼굴은 함박 웃음들로 달덩이같이 환하다.
이 기쁨, 이 즐거움의 라인에서 비켜 서고 싶지가 않다.
마니아가 되기는 요원한 일이지만, 나도 슬슬 달리기에 맛들여져 간다.
오늘, 언니가 보내준 조카들의 사진을 보며, 다시 한 번 달리기 가족으로서의 열정을 되찾았으면 한다.
언젠가, 조카들과 함박 웃음 머금고 나란히 스타트 라인에 설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