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마리아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 이거 먹을 있어?" 하고 런치 통에 음식을 불쑥 내민다.
나는 애가 자기 나라 고유의 특별식을 와서 먹어보라는 알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
뭔데?" 하며 런치통을 나꿔채듯 뺏어 들여다 봤더니, 거기에 '번데기 요리' 들어있는 아닌가!
"
어머나! 번데기! 아유, 징그러워!!!"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질겁을 하고 물러섰다.
세상에! 미국에서 번데기를 보다니!
아득히 전설 같은  초등학교 시절, 교문 앞에서 팔던 번데기 그대로다.
기름에 볶았는지 번질번질하다.
삶은 번데기를 수북히 쌓아 놓고   컵씩 떠서 꼬깔 봉지에 주던 번데기.
세상에, 봉투가 깨끗하기라도 했나.
하지만, 친구들은 고소하고 맛있다며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가며 먹던 추억의 간식이다.
특히, 오돌오돌 떨며 공부하던 겨울철 하교 시간이면 꼬치 오뎅과 함께 번데기는 인기 쨩이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번데기 포장마차의 유혹을 이겨내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홀린 빨려 들어가던 코흘리개 친구들 모습이 어제런 선하다.
먹어 적도 없고 유쾌하진 않으나, 친구들 생각을 하며 번데기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통통한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몸통은 특유의 주름도 가지런히 잡혀 있었다.
번데기 주름을 보자,  "!"하고 웃음이 나왔다.
중학생 시절, "임마, 자석!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나?" 하며 거들먹거리던 머스마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하교 여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모퉁이에서 주로 짓을 했다.
그럴 때면, 세라복에 주름 치마를 얌전하게 차려 입은 우리들은 눈을 내리깐 종종걸음으로 앞을 피해 가곤 했다.
골목길을 벗어나면, 우스개 하는 친구는 "쨔식! 졸지에 지가 번데기 줄도 모르고 주름 치마 입고 가는 우리 앞에서 주름을 잡아?" 하고 허리를 꺾어지게 했다.
지금쯤은 까까머리 머스마들도 아빠 되고 할아버지 되어 이마에 주름 잡고 살아 가겠지.
훗날, 세월 앞에 주름 잡고 살아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쨔식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허세랄까, 호기가 귀엽기도 하네.
잠깐 번데기 추억 여행을 하는 사이, 마리아가 빙글빙글 웃으며 하나만 '츄라이' 보라고 다시 권한다.
내가 질겁을 하고 물러서던 모습이 재미있었나 보다.
사실, 본인이 아니고 월남 스티브가 간식으로 거라며 자기도 하나 먹어 봤단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멕시칸까지 번데기를 먹을까 싶었다.
단백질이 많고 몸에 좋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손사래를 치며 댕큐라고 했다.
어릴 때도 그렇게 먹어보라고 권했어도 징그러워서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는데 이제 와서 '벌레 볶은 ' 먹게 생겼나.
그것도 먹거리가 천지에 쌓여있는 미국 땅에 까지 와서 말이다.
마리아도 런치통을 닫으며 사실 자기도 징그러워서 하나만 '츄라이' 하고는 먹었다며, 놀리느라 자꾸 권했다고 실토한다.
나는 맛있다는 순대도  '창자 속에 음식'이란 선입견 때문에 먹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좋다는 닭똥집도 '이름이 비위를 상하게 해서' 먹는다.
학보사 시절, 포장마차에 들리면 오돌도돌 씹히는 맛이 좋다며 동료 기자 친구들은 잘도 먹던 닭발도 '발목 잘린 ' 떠올라 외면하곤 했다.
그런 무심히 먹는 친구들이 부럽기는커녕, 오히려 야만인 같고 몬도가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보였다.
지금도 염소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먹는 육류(?) 많다.
한가한 틈을 이용해 구글에서 번데기를 검색해 보니, 의외로 영양가가 높고 요리법이 다양해 동남아 쪽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나와 있다.
별별 채소를 넣고 끓인 '번데기탕' 아이들 간식용으로 만든 '번데기 달걀말이', 거기에 걸쭉하게 낫토처럼 딸려 올라오는 '치즈 번데기탕' 음식 종류도 많았다.
심지어, 건강식이라고 깡통 음식으로도 나와 있단다.
아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죽을 때까지 '벌레 볶은 ' 먹고 살란다.
그렇다고, 친구들아!
"
데기, 데기, 번데기!" 하고 놀리진 말거래이.
너희들이나 많이 먹고,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거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