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9954055249.jpg

그리고 엔젤이 남긴 빈자리 - 김영교 

 


소미 ‘아부지’는 경상도 남자다. 이 주택단지 안에서 동향인 소미네와는 각별하다. 음식 솜씨 좋은 소미엄마는 투병경력의 나에게 곰국, 설렁탕, 김치, 녹두죽, 닭고기 볶은 밥, 등등 늘 음식을 식기 전에 가져다 준다. 어느 날 가디나에 있는 오픈 뱅크 한인 거래처에서 소미 아부지를 우연히 l만났다. 반가웠다. 오랜만인지라 그 ㄱ,비 피해는 없었는지 인사를 나누었다. 은행에도 고객 우대커피가 있고 바로 옆이 커피숍이었다. 속으로 끝내고 커피 대접해야지...


9개월짜리 엔젤이 낯선 차에 치어 숨을 거둔 게 딱 2주 전인지라 혼자서 심힌 가슴앓이를  하면서 외출도 않고 심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에게는 더 없이 좋은  데라비스트로 였다. 재롱을 피우다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늘 손 가까이서 잠들었다. 불임수술까지 시켰을 때는 둥글고 큰 콘 고깔을 쓰고 힘들면서도 그 불편을 잘 참아줬다. 6주 오비디언스 스쿨에도 잘 적응, 훈련 받으며 아프고 가려운 상처도 잘 감내했다. 완전 신뢰가 쌓여 서서히 가족이 되었다. 졸졸 따르고 눈 마주치던 절대 순종의 엔젤이 가고 지금 곁에 없다니 믿을수가 없다. 가여워서, 가여워서 가슴 한 복판이 에인다. 눈치 없는 눈물은 시도 때도 없다. 주인도 가고 반려견도 가고 둘다 다 가고 없는 빈집에 말 붙일 따뜻한 체온이 없는데도  실내 화초는 싱싱하다.


코 암으로 투병중인 손아래 친구가 사정하고 설득해 자기아들의 꼬맹이 어린 녀석을 아픈 남편에게로 입양시켜 엔젤이 되었다. 태어나서 3개월, 남편과 3개월, 그리고 나와 3개월, 엔젤하고 인연은 그게 다인가!` 아쉽다. 무척 아쉽다. 아들이 알면 기절할 것 같다며 비밀로 하자고 우리는 울면서 서로 위로하고 제안에 응했다. 남편은 로스힐 스카이 채풀 고별예배를 마지막으로 지상을 떠났다. 엔젤은 pet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나는 친구의 코 암 덩어리를 가지고 가줄수 있느냐고 물으며 부탁하며 쓰담고 또 쓰담으며 가슴저미는 안타까운 작별을 했다. 그 무렵 이웃 친구 남편 소미 아부지를 우연히 만나 반가웠다. 우리 집 반려견 엔젤 소식을 전하고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거운 나는 가벼워지고 싶었나 보다.


엔젤은 시바 이누 종자다. (Shiba Enu) 조상에 진돗개 피가 흐른다 했다. 의사가 스피치 테라피스트(speech therapist)로 추천했을 때 긴가민가했다. 영리한 3개월 짜리 어린 녀석이 비상하게 민첩했다. 눈짓, 손짓, 소리짓,  "짓"으로 남편은 소통했다. 처방약 후유증으로 성대와 기도 근육이 무기력, 실날 목소리로 엔젤하고는 척척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남편 오른 팔 옆에서 코박고 잠든다. 앵무새나 열대어, 고양이나 강아지가 데라피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남편을 잘 보필한 엔젤, 고마웠다. 남편이 남긴 그 엄청난 그 비움에 눌려 늘브러 질 수 밖에 없었던 극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체온있는 어린 생명이 끙끙대는 통에 물도 주고 밥도 주고 뒷뜰 문도 열어주고... 엔젤은 그렇게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구명을 한 엔젤이 었다.


엔젤이 사고로 떠난 후 남긴 많은 장난감과 흔적들이 나를 집안에 가두었다. 그 무렵이었다. 젖은 우기가 가시고 모처럼 은행 외출에서 소미 아부지를 만났으니 반가울 수밖에. 커피 할래요? 커피 방금 마셨는데요. 소미 아부지와 커피 마시는 그 동안만이라도, 대화 나누는 그 짧은 동안 만이라도 엔젤 생각을 내려놓고 싶었나보다. 소미 어무이는 세상 상냥 나긋나긋녀인데 아차, 그는 전형적인 갱상도 남자, 무뚝뚝함이 재확인 되었다. 은행직원들 앞에서 약간 무안당한 커피타임 좌절이 사랑스런 엔젤 기억 저편에 있다. 그 한 마디를 능가하는 엔젤과의 좋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고마운 엔젤 얘기는 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만  피고 또 핀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