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부터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나무로 짠 누런 화구통에 얼룩덜룩 오일 페인트를 묻히고 다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아이들이 모두 제 몫의 삶을 찾아 떠나고 오직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널널한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

집에만 들어오면 무조건 이젤 앞에 앉고 싶으니 이제사 진정한 내 취미를 찾았는가 싶다.

 

남편은 새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마당으로 매일 나간다.

앞 뒷마당에 심은 봄꽃에게 물을 주면서 마냥 즐겁다.

한바퀴 돌고 나니 온 마당이 환해졌네.

화초들이 고맙다고 와글와글 고개를 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아.

마당 한 켠에 서서 둘러보며 흡족하게 웃는다.

 

일요일 오후.

뒷마당으로 나가는 소리를 못 들은 척 앉아서 그림만 그렸다.

물을 주고 죽은 꽃이파리를 따주고 빗자루로 마당을 쓸며 청소하다가

한번씩 허리를 펴고 모자를 벗으며 땀을 닦는 남편을 창을 통해 내다봤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가서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을 끝내고 들어와 엎드려 발을 닦는 뒷 등에  대고 말했다.

당신은 뒷마당 가꾸는 걸 취미로 삼고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합시다.

슬쩍 던지는 내 말에 기분 좋게 대답한다.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네.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동생이 왔다.

내가 자랑삼아 말했다. 형부 취미는 마당 가꾸기. 내 취미는 그림 그리기로 정했다고.  

동생이 막 웃었다. 참 좋네. 한 사람은 안에서. 한 사람은 밖에서. 각각 떨어져 둘이 싸울 일도 없고.

형부 참 좋은 취미 가지셨어요. 취미 잘 살리세요.

이제 언니집 앞 뒷마당은 꽃으로 엄청 예쁘겠네.

 

옆에서 듣던 남편이 처음에는 기분 좋게 웃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한다.

처제.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밑지는 취미 같아요...  나, 그 취미 안 할래.

이 남자, 눈치 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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