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중앙일보] 발행 2021/09/02 미주판 21면 입력 2021/09/01 19:00

 

 

아프가니스탄 정권이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최근 그곳에서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총살 당하는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보았다. 21세기 문명의 시대에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여성이 저렇게 취급 받는 곳이 있다니, 분노가 일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무시 받고 차별 당하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일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니 1966년의 일이다. 당시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유학을 갈 수 있던 여학생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서울에 와서 음악다방을 알게 되었다. 커피 맛도 모르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 연기 자욱한 홀에서 팝송을 들으며 한 모금의 커피로 청춘을 즐겼다. 그 시간이 강의 시간보다 훨씬 좋았다. 부모의 고생을 헤아리지 못하던 철부지였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갔다. 여고를 졸업하고 고향을 지키고 있던 친구들한테 명동 다방 분위기를 말해 주었다. 내 고향 충주는 한국 최초 비료공장이 세워진 소도시였다. 공장으로 인해 대학에서 화공과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 즈음 충주에 다방이 하나 새로 생겨났다.

토박이 처녀들은 아직 아무도 다방 구경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서울의 다방, 뮤직홀 등을 신나게 떠들어대자 모두 호기심이 발동했다. 다음 날 12시 다방에 가서 커피라는 걸 마셔보자고 약속을 했다.

다음 날, 친구 대여섯 명이 함께 다방에 들어섰다. 마담과 레지만 있고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마담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고, 레지라고 불리는 종업원은 양장을 입었다. 그녀는 커피를 주문 받고 갖다 주는 일을 했다. 4명씩 앉을 수 있는 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자리를 찾아서 앉으려고 할 때 마담이 와서 말했다. 우리가 첫 손님들이라 커피를 팔 수 없단다.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쳐다보며 이유를 물었다. 여자 손님으로 개시를 하면 그날 하루 재수가 없다고 쌀쌀하게 나가 달라고 했다. 당황스러웠고 모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기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쫓겨나듯 나와야만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다. 불과 5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런 중에도 우리나라가 남녀평등 기본을 다지며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대접하는 사회로 발전해 온 것은 모두에게 다행이고 축복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여성의 힘이 반 이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을 인간답게 대접하지 않는 야만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종교나 관습을 이유로 여성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차별 받는 여인들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