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입대하는 남편 배웅하던 날

권조앤 / 수필가
권조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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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9/09/24 미주판 20면 입력 2019/09/23 18:46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 신랑 엄마가 반대한 결혼이었다. 문득 50여 년 전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23살 동갑내기였다. 신랑의 군 입대 한 달을 남겨둔, 온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올리는 결혼식이었다.

결혼 전, 신랑은 제대할 때까지 나를 친정에 살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신혼 한 달을 지낼 무렵, 입대 날이 다가오자 시부모님으로부터 집으로 들어오라는 통지가 왔다. 입대 이틀 전까지 뻗대다가 경주 시댁으로 내려갔다.

그날 시어머님은 집에 온 첫밤은 부모와 함께 보내야 한다며 신부를 혼자 자도록 했다. 남편은 거절 못하고 안방에서 잤다. 안타까운 밤이 지났다. 다음 날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입대하던 날, 슬픈 내색도 못하고 남편을 배웅했다. 낯설고 물선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밤마다 눈물범벅이 되었다.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 남편이 어머님께 편지를 보냈다. 전방으로 가고 싶지 않으니 돈 3만원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3만원은 교사 월급보다 많은 돈이었다.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과 상의 하실 때 돈을 보내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시부모님께 처음 내 의견을 표시한 자리였다. 나는 결혼 후 군대 이상으로 긴장하며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으나, 친정에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고 지내던 터였다.

그날 밤 장문의 편지를 썼다.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국방 의무를 하는데 무슨 편한 곳을 찾느냐, 전방으로 가도 나는 보고 싶은 것 참아 낼 수 있다, 어디로 배치되건 3년간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3년 세월을 꿋꿋하게 잘 보내고 당당한 결혼 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혼 전 둘째 오빠가 너희 남편이 탈영 안하고 견디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훈련소 면회를 가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말도 못 꺼내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추운 겨울 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남편이 서 있었다. 하도 반가워 울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시댁이라 참아야 했다. 대구 5관구 사령부로 배치되어 가는 길에 집에 들른 것이었다. 부엌에서 김치 국밥을 끓여가니 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모두 둘러 앉아 얘기꽃이 한창이다. 울음을 참는 나는 왠지 소외감을 느꼈다.

이윽고 신랑이 내 방으로 왔다. 어떻게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대구로 배치되었을까. 꿈만 같았다. 사연인 즉, 부대에서 편지를 검열하는데 내 편지가 걸렸단다. 내용을 보니 후방에 배치 받고 싶어 돈 3만원 보내라고 하다니 옳은 일이 아니다, 군 생활 꾀부리지 말고 착실하게 하라는 편지여서, 부대장이 감동하여 집 근처로 보내주었단다.

시집에서는 복덩이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신랑 군복무 동안 나는 경주 시내 모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남편은 3년 군 복무를, 나도 시집살이 3년을 잘 마쳤다.

조카 덕택에 오래된 내 결혼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새록새록 웃음이 피어오르는 달콤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