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니스

   


대학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딸이 15년 만에 캘리포니아로 이사 왔다. 이곳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딸이 동부의 대학으로  떠날 때만 해도 그 일이 이렇듯 긴 그리움의 시작이 될 것 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지인들은 내가 로또를 맞았다며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딸네 가까이로 집을 옮기며 또 한 번 버리느냐 마느냐로 선택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가로 15인치, 세로 20인치의  액자의 위쪽에 남편의 이름이 양각으로 새겨있고 아래쪽에 현란하게 수놓인 무궁화 꽃잎 사이로 시상자인 그당시 대통령의 이름이 아른아른 보인다.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을 대한민국에 안긴 공로로 남편이 받은 훈장이다. 그 훈장을 없애느냐 가보로 남기느냐하는 문제는 훗날 아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삼년 전  짐 속에 넣어 왔었다. 이번에 또 이사하며 문득 깨달았다. 이미 레테 강을 건넌 남편도 잊어버렸을 그 훈장을 내가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떠나보내자. 액자만 버릴 수 없어서 폐기처분 할 짐 속에 넣어서 가만히 밖에 내 놓았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머리에 떠 오른 이름이 왜 노벨상을 박차버린 사르트르였을까1964노벨상 위원회는 그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장폴 사르트르를 선정했고 사르트르는 수상을 거절했다노벨상을 퇴자 놓은 것이다그 7년 전인 1957년에 사르트르보다 8년 연하인 알베르 카뮈가 이 상을 먼저 받았던 데 대한 분풀이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사르트르는 이 상을 거절함으로써 수상보다 더욱 빛나는 명예를 얻었다.

인생이란 버스(birth)와 데스(death) 사이의 초이스(choice)”라고 했던 사르트르에게 평생의 가장 극적인 초이스는 바로 노벨문학상을 거절한 일이 아니었을까. 5.16 문학상을 한마디로 거절한  시인 유치환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엄정하던 군사정권 시절에 5.16 문학상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상 받을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고 수상자를 발표하라.”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시성들을 거느린 영미에도, 프랑스에도 문학상은 콩쿠르를 위시해 서넛 정도로 알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는 각종 예술상, 문학상이 프랑스의 치즈 가짓수만큼 많다.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름의 상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상이 이처럼 많은 원인은 사람들이 상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는 곳엔 반드시 공급이 있다고 했던가.

 

이렇게 늘어 난 상들은 상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문학적 가치를 손상한다. 필경에 상()행위는 상()행위로 변절되었다. 몇 년 전에 수필집을 한 권 내고 수상행렬에 줄 섰다가 상행위의 민낯을 보았다. 소문이 나자 주위에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상을 구매하기 위한 동전꾸러미 소리도 요란하게 보무도 당당하게 최고 포식자의 이빨을 드러내고 시상자의 주위를 맴돌았다.

 

상은 받는 사람보다는 주는 사람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에는 반드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순리대로라면 수상자는 갑이고 시상자는 을이어야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상은 심사위원들에게 터무니없는 권위의식을 갖게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스스로 갑이 되어 단상에 높이 앉아 단하에 펼쳐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을 구걸하는 행렬을 즐기며 차츰 상()해 간다.  주위에 수상경력이 약력의 반 페이지를  차지하거나  상을 베풀 위치에 있는 원로가 상을 차지하는 경우를 보면 씁쓸하다.

 

훈장 아래쪽에 있던 그 시상자를 생각한다. 그가 아닌 다른 이름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남편의 훈장은 한 번쯤 더 내 거실에 걸리지 않았을까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깼다. 문 앞에 놔 둔 꾸러미가 생각났다. 이번엔 정말 버려야 한다. 벌떡 일어나 집어 들고 쓰레기장으로 갔다. 모두 잠든 시간이다. 번쩍 들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내 가슴에서도 쿠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