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숙자 선생님, 수필가 유숙자 선생님

 

한 진지한 인간이 있습니다.

발걸음조차 진지하게 옮기고

호흡조차 진지하게 쉬지 않을가 생각되어지는 사람입니다.

농담보다는, 유머보다는, 단 한마디라도

가슴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이 사람 앞에 서면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재클린 뒤 프레가 연주하는 콜 니드라이

혹은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61번

제 2악장을 LP판으로 들을 때면 만사를 통과시키고 만사를 접수하는 사람입니다.

 

외로운 사람

그러나 한번도 타인에게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사에 놀라 늘 가슴을 떨고 

잎새 한 장 구르는 소리에도 감동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사람입니다. 

안개빛 같은 영국의 테임즈 강가를 꿈속인양 거닐며

추억과 현실을 무시로 넘나드는 사람입니다.

발레의 추억이 있고 

최고의 연인, 음악이 곁에 있어서

늘 행복한 사람입니다.

 

진지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기위해 늘 아픈 사람

자신처럼 아픈 사람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

신의 존재를 믿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슬하의 두 아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피붙이와 친구와 하늘의 인격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한번 사랑하겠다 마음 먹은 사람,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

행복하고 건강하고 거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만년 소녀

지치지 않는 순수가 늘 샘솟는 사람

계절을 잘 타서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사람

늘 젊은 사람입니다.

세월이 이 사람을 늘 비껴가는 것만 같습니다.

 

의리의 사람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

약자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가슴이 먼저 무너지는 사람

Peacemaker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돕고 다독이는 사람입니다.

 

글을 힘들게 쓰는 사람

한 문장 한 단어를 위해 몇날 며칠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삶을 수필처럼 사는 사람

수필 같은 삶을 사는 사람

시보다 소설보다 수필이 딱, 맞는 사람입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열어 보이는 사람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받으면 일단 가슴에 품어본 다음

옥(jade)으로 만든 envelope opener로 살짝 천천히 열어 읽는 사람

베이지색 바지 정장과 크림색 버버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

고상하고 우아하고 섬세한 단어를 총 동원하여 장식하면 딱,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빈사의 백조

발레를 할 때는 가장 적은 면적을 디디며 살기위해 고통 했던 사람

이제 당당히 두 발로 굳게 서기를 원하는 사람

문학을 하면서부터, 수필을 쓰면서부터

다시 부활한 백조

발레를 향한 못다 이룬 꿈과 음악을 사모하는 연정을

한바탕 춤사위 같은 수필로 풀어놓고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음악에 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삶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늘의 인격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사람을 조심할 일입니다

그녀의 아름은 인간 유숙자, 수필가 유숙자입니다.

 

9월 21일 2006년

 

하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