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단톡방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최숙희
작년에 서울을 갔다가 여동생이 ‘당근마켓’을 이용해서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고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앞글자라고 한다. ‘중고거래부터 동네 정보까지, 이웃과 함께해요. 가깝고 따뜻한 당신의 근처를 만들어요.‘, 라는 설명을 읽었다. 나는 인터넷사이트를 통해서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왔는데 미국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장거리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런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비슷한 개념의 동네 단톡방에 초대받았다.
코로나로 집에 들어와 살던 아들이 아파트를 다시 얻어 나갈 때 소형 이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을 단톡방에서 소개받고 수월하게 이사를 끝냈다. 아들이 나가니 깔끔하게 부부 둘 만을 위한 집을 꾸미고 싶었다. 내게는 불필요하지만 남이 필요할 수 있는 물건을 단톡방에 올렸더니 이웃에서 바로 연락이 오고 직접 만나 거래가 손쉽게 성사되었다. 멀쩡한 물건을 버릴 때 드는 죄책감도 안 생기고 재활용으로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니, 이것이 바로 윈-윈 아닌가.
단톡방이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를 돕자는 취지로 시작한 만큼 광고가 주를 이룬다. 보험, 융자, 부동산은 기본이고 전기 기술자, 플러머, 페인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연락처가 리뷰와 함께 추천으로 올라온다. 골프, 마라톤, 등산, 필라테스, 테니스, 붓글씨, 그림, 노래 등 다채로운 취미생활 소개와 모임 안내는 조만간 은퇴를 생각하는 내게는 솔깃한 정보이다. 맛집, 병원, 봉사활동에 대한 정보도 유용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조회 수를 늘리려 반복해서 노출 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피로감도 느끼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자극도 받고 치열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다. 하지만 매일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광고성 알람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서 단톡방 탈퇴를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아이와 운전 중에 타이어가 펑크나서 차가 주저앉았어요. 주말 밤이라 카센터도 문을 닫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라는 다급한 카톡이 올라왔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시죠. 제가 가까이 사니까 AAA 카드 갖고 나갈게요.’ 늦은 시간에도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도우러 한걸음에 달려 나오겠다는 답글이 달렸다. 아시안 증오범죄에 관한 기사도 심심찮게 접하고 다운타운에서 쫓겨난 노숙인들이 우리 동네까지 내려와 배회하는 요즘이지만 한국인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내가 받은 도움 나도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꼭 돕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사히 집에 돌아간 분의 실시간 감사 답글을 보고 마음졸이던 사람들 모두 안심했다. ‘이민 사회에서 같은 한인분들이 이런 도움받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다 감사하네요.‘ ’멀리 살아 도와드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다행입니다. ‘등등 ’봄날의 햇살‘같은 댓글이 줄을 잇는다.
우리 동네 단톡방, 탈퇴하지 않을게.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커뮤니티 소통과 교류의 창구로서 늠름하게 버텨주길 바란다.